약사여래
- 최초 등록일
- 2012.06.20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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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약사여래
목차
Ⅰ. 머릿말
Ⅱ. 藥師佛像
1. 藥師佛像의 도입과 유행
2. 藥師佛像의 대표작 金銅藥師如來立像
3. 藥師佛像의 특징 手印
4. 藥師佛像의 미술사적 의의
Ⅲ. 맺음말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릿말
인간의 근본 苦는 生老病死이다. 그 중 가장 현실적인 苦를 들라면 病苦를 들 수 있다. 죽기가 싫어 불로초를 구하고자 했던 진시황도 죽었고,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당태종도 永生하지 못했다. 아름다움을 구가하던 청춘은 순식간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늙음으로 대체되고, 건강한 몸도 몇 년 뒤에는 병들어 고통에 허덕인다. 누구나 건강하고 젊게 살고 싶지만 흘러가는 시간이 용서치 않기 때문이다. ‘病苦’에 시달려 본 사람은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건강하게 죽었으면 좋겠다.’ 는 말도 병고에 시달려 본 사람, 아니 타인의 병고를 본 사람들도 한결 같이 하는 말이다. 누구나 건강하게 살다 건강하게 죽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건강하게 살다가 건강하게 죽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모두가 시달리는 병고,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불교에 ‘병고중생’을 구제해 주는 부처님이 없을 수 없다. 이처럼 인간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질병문제를 불교에서는 藥師信仰으로 해결하려고 했으며 약사여래불이 그 분이다.
<중 략>
4. 藥師佛像의 미술사적 의의
위와 같은 점을 염두해 두면서 통일신라 藥師佛像의 미술사적인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통일신라 藥師佛像이 갖는 미술사적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우리나라의 독특한 藥師佛像 圖像인 降魔觸地印이 변형된 藥師佛 手印이 統一新羅에 정착되어 이와 같은 독특한 藥師佛 手印이 통일신라 이후 藥師佛像의 가장 보편적인 圖像이 되고 있다.
둘째, 동시대의 인도나 중국과 비교했을 때 통일신라 藥器인 藥師佛이 갖는 의미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藥師信仰이 발생한 인도에는 藥師佛像이 남아있지 않으며, 통일신라와 동시대의 중국에도 주로 藥師佛像淨土藥相圖가 남아있을 뿐이다. 용문석굴에 남아있는 藥師佛像도 선정인을 한 수인 위에 藥器를 올려놓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강우방, 『한국 불교 조각의 흐름』 대원사, 1995
조병활, 『불교미술기행』, 이가서,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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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식, 『통일신라 석조미술 연구』, 학연문화사, 1994
文明大, 「新羅下代 佛敎彫刻의 硏究(Ⅰ)」, 19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