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2.04.26
- 최종 저작일
- 2003.05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청일전쟁의 전개 과정입니다.
목차
1. 청일전쟁의 발발
2. 청일전쟁의 전개
3. 청일전쟁의 결말
본문내용
1.청일전쟁의 발발
1894년 2월 15일 전라도 고부에서 탐관오리의 탐학에 분노한 농민 1,000여명이 전봉준의 지휘하에 고부군수를 축출하고 관아를 파괴한 다음 일단 해산하였다. 4월 하순 다시 집결한 이들은 그 수가 수천에 달했으며 각지를 전전하여 도처에서 관병들을 격파하였다. 중앙정부 당국은 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임명하였다. 그는 신식병기로 무장한 경군 800여명을 이끌고 서울을 떠나 인천에서 원세개가 주선해준 북양해군 경비선과 상선에 분승하여 현지에 도착하여 5월 11일 전주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관군은 도망병이 속출하고 사기가 부진하여 5월말 동학군의 공격을 받자 전주성을 포기하고 패퇴하였다. 홍계훈은 이미 5월 23일 현지에서 상소를 올려 동학군을 진압할 자신이 없음을 고배하고 임오․갑신변란 때의 예를 따라 청조에 파병을 요청할 것을 건의하였다. 당시 그는 왕실과 민씨 일파의 신임이 가장 두터운 장령이었고 원세개가 평소 비호하는 인물이었다. 고종과 일부 정신들은 청조의 파병은 기필코 일본의 파병을 초래할 것이며 러시아 역시 이에 따를 것이니 서둘러 청병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특히 영돈녕부사 김병시는 난민이라도 자국의 백성인데 이들을 타국의 군대를 빌어 토벌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하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관군의 전주 실수의 보고에 경악한 정부는 청병하기로 결정하고 6월 3일 원세개에게 이를 정식으로 요청하였다. 바로 이 결정이 이홍장의 조선정책의 파국을 초래하고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참고 자료
박종근, 박영재역, 「청일전쟁과 조선」, 일조각, 1989
조훈,「강좌 준국근현대사」, 역사교양사. 1999.
최문형, 「한국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지식산업사, 2001
한국사 40,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국사편찬위원회, 2000
한국사연구회 편, 「청일전쟁과 한일관계」, 서울: 일조각,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