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근대사] 제1차 아편전쟁으로 본 중국근대사
- 최초 등록일
- 2002.11.08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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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 문
*본 문
1.대내적 요소
○ 청조사회의 변화
2. 대외적 요소
○ 영국동인도사회의 활동
3. 대내·대외적 요소
○ 광동무역체제와 중영교섭
4. 중영무역의 전개와 청조의 아편대책
1) 중영무역의 전개
2) 아편문제와 청조의 아편대책
5. 임칙서의 강경대책과 전쟁의 발발
6. 불평등조약체제의 성립
7. 아편 전쟁 후 중국 사회의 변화
1)외국 상품의 쇄도와 자연 경제의 해체
2) 반식민지적 도시의 출현과 계급 구조의 변화
*결문
*참고문헌
본문내용
중국역사에 근대사를 어느 시점을 잡느냐를 가지고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시 되어온 서양의 '충격'에 중국의 '반응'이라는 근대화이론은 1차 鴉片전쟁이야 말로 제국주의적 군사·경제·사상·정치적 우세가 중국이라는 커다란 봉건주의적 국가를 진정한 근대의 세계사로 편입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명말 혹은 명청교체기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시되고 있다. '충격', '반응'의 근대화이론은 이제까지의 제국주의 모순점을 감추려고 하는 외적요소를 중시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명말 혹은 명청교체기로까지로 해야한다는 주장에서는 명청교체기에 이미 '자본주의적 맹아'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여 논거로 삼기도 하고, 내부적으로는 만주족이 흥기하여 淸朝가 성립되었으며, 외부적으로는 지리상의 발견으로 인해 서양인이 도래함으로써 서양학문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하여 내인을 강조하고 외인을 무시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충격과 반응이론과 명말 혹은 명청교체기로 잡아야 한다는 이론들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론적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어느 한쪽만을 편향된 시각에서 받아 들여서 중국 근대사의 기점을 잡아서 안될 것이다. 내부적으로 자본주의 맹아가 나타나고 서양의 사상이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하나 이는 사회적 질서의 붕괴를 가져올 정도의 충격은 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것을 볼 때 明末 혹은 明淸교체기로 중국의 근대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은 무리가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참고 자료
《중국근대사》, 조시원 主編, 중국사연구회 옮김, 청년사, 1990.
서울대학교 동양사연구실 편,《강좌중국사》, 〈중화제국의 동요〉, 지식산업사, 1989.
《중국사 서설》, 이춘식 著, 교보문고, 1991.
《을유문화사》, 존K. 페어뱅크, 에드원O. 다이샤워, 알버트M. 크레이크, 김한규·전용만·윤병남 옮김,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