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의 성립과 전개
- 최초 등록일
- 2012.02.29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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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Ⅰ신라 하대의 사회 변화
신라 말 정치 사회의 동요
골품제의 모순
신라하대의 지방 사회
사상계의 변화
농민의 봉기
Ⅱ후삼국의 성립
후고구려의 궁예
고려의 왕건
후백제의 견훤
Ⅲ통일 전쟁
Ⅳ후삼국 통일
신라 멸망
후백제의 멸망
결론
본문내용
서론
우리나라 역사상 박진감에 넘쳤고 생기 가득 찼던 시대를 꼽으라면 단연 후삼국 시대를 말할 것이다.
세상 끝날까지 서릿발 세워 호령하며 영원할 것 같은 신라왕국이었다. 그러나 천년왕국이 어느 순간 제 나이에 겨워서인지 몸을 주체하지 못한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간 사람들을 조여왔던 서슬퍼런 골품제의 사슬도 그만 끊어졌다. 이제는 신분이나 혈통이 아니었다. 능력이 좌우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민족의 에너지와 개인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산되었다. 통일국가 때보다 분열되었을 때 오히려 왕성한 열정과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천년왕국의 몰락과 그로 인한 혼돈이 걷히면서 3명의 걸출한 영웅이 역사의 전면에 우뚝 서게 되었다. 궁예와 견훤 그리고 왕건이었다. 다시 통일 국가를 위한 이들은 투쟁에서 지금 남과 북이 나누어져 있는 우리의 현실을 한 번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본론
Ⅰ신라 하대의 사회 변화
신라 말 정치 사회의 동요
신라는 통일 후, 신문왕을 거쳐 성덕왕과 경덕왕까지는 이른바 중대 전성기로서 태종무열왕계 왕권의 안정기였다. 하대의 문을 연 제 37대 선덕왕(780~785) 김양상은 귀족 합의체의 우두머리인 상대등의 지위에 있다가 김경신과 함께 김지정의 난을 진압하고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선덕왕은 즉위하자마자 김경신을 상대등에 임명했다. 이것은 선덕왕때의 정국이 귀족 연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선덕왕이 죽은 후에는 그의 조카인 김주원을 밀어내고 상대등이었던 김경신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신라의 전통적 왕위 계승법에 따른다면, 왕위 계승권은 단연 김주원에게 있었다. 그러나 김주원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배재되었다. 바야흐로 무력이 혈통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참고 자료
『태조 왕건』, 김갑동 지음, 일빛
한국사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12권 『고려왕조의 성립과 발전』,국사편찬위원회
논문-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과정 연구』,문수진 지음,성균관대
『후삼국 상호항쟁에 관한 연구』,국옥지 지음,부산대
『태봉의 궁예정권 연구』,조인성 지음,서강대
『후백제 견훤정권 연구』,신호철 지음,서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