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현에 대하여 (국어 국문학)
- 최초 등록일
- 2012.02.20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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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언
2.본론
1)허균의 소실 무옥의 것이라는 설
2)시 분석
-내용분석
-표현분석
본문내용
1. 서언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시인으로는 허난설헌, 황진이 등을 뽑을 수 있는데, 그 중 천재적인 시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생을 불행하게 살다 스물일곱의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난 허난설헌의 가사작품 한 편을 살펴보기로 했다.
허초희(許楚姬)는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난설헌(蘭雪軒), 별호는 경번(景樊)이다. 난설헌은 강릉 출생으로, 초당 허엽(許曄)의 딸이며, 허균(許筠)의 누이이다. 삼당판시인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했으며, 16세에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했으나 금슬이 좋지 못했다.
난설헌은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했다. 손곡 이달과 오빠 허봉(許封)을 통한 문장수업은 그녀의 작품세계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난설헌이 당대의 사회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스승 이달과의 만남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또한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시와 함께 하였다. 1585년 어느 날 꿈 속에서 선계인 광상산에 올랐다가 두 선녀의 청으로 시를 썼는데, 잠에서 깨어나 그 때 읊은 시를 생각하며 <몽유광상산>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나의 27세 되던 해에 홀연히 의관을 정제하고 집안사람들에게 “금년이 바로 3·9의 수(27세)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 하고는 눔을 감았다. ‘연꽃 스물일곱 송이’는 그녀의 나이와 같으니, 자신의 죽을 나이를 예견한 것이다.
허난설헌의 사후에, 동생 허균이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