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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序論
2. 本論
1) 金富軾의 생애
(1)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며
(2) 김부식의 역사관
(3) 연표
2) 三國史記의 歷史認識
(1) 삼국사기의 구성
-進三國史記表 및 구성
(2) 삼국사기 논쟁
-김부식의 사관에 대하여
-고의적 누락과 날조 여부
-삼국에 대한 자세
3. 結論
-요약․정리
-삼국사기를 보는 나의 견해
*발표시 질의내용에 대하여
<參考文獻>
본문내용
1. 序 論
三國史記는 인종 23년(1145)에 김부식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삼국시대의 정사이다. 우리가 現有하는 最古의 사적으로 『三國史記』를 꼽는데는 대다수가 동의하지만, 이 역사서의 성격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삼국사기를 보는 시각을 크게 두가지로 본다면, 첫째는 삼국사기의 저술에 있어서 김부식의 유교적 사관이 삼국시대가 가진 전통문화의 체질을 부인하고, 동시에 한국의 삼국시대가 가진 고대문화에 대한 가치평가를 낮추었다는 관점이다.
둘째는 김부식에 의한 刪削이 가해지기는 했으나, 『三國史記』가 중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대를 표현하고 있지는 않으며, 오히려 후대의 성리학적 사학자들보다 더 형식주의적인 예절론에서 벗어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본론에서는 먼저 김부식의 생애와 그의 역사관에 대해서 살펴보고, 『三國史記』의 역사인식을 바라보는 시각의 쟁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각 쟁점에 대한 입장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2. 本 論
1) 金富軾의 생애 - 문종 29년(1075)∼의종 5년(1151)
(1)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며
고려 중기의 유학자·역사가·정치가·문학가이다. 본관은 慶州이며, 자는 미상, 호는 雷川이다. 얼굴이 검고 우람하였으며, 고금의 학식에 있어서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흔히 김부식의 가문을 慶州 김씨라 하여 고려의 문벌귀족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는 김부식이 출세한 후에는 해당될지 모르지만 그가 출세하기 전에는 아직 문벌가문이 아니었다. 김부식은 경주에서 태어나 10대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형제는 『高麗史』의 기록에는 4형제로 기록되었으나 승려가 된 형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5형제였던 것 같다.
김부식 형제들이 자신의 가문을 한미하다고 하는 견해가 있는데, 어린 나이에 아버지도 이미 잃었고, 경주의 향리 가문의 후예였던 그들을 당시 개경의 문벌 귀족에 비추어 보면 과장된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부식이 관직을 통하여 출세한 것은 전적으로 그의 문학적 소양과 유교적 지식에 의한 것이며,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 성취한 것이었다. 김부식이 청장년기에 가졌던 학문의 목표는 공자의 예법을 실시하여 유교의 이념을 펴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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