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조선공산당 활동
- 최초 등록일
- 2011.12.06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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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방 이후의 조선공산당의 주요 활동내용입니다.
목차
조선공산당의 정세 인식과 민주주의 혁명론
❍정세 인식
❍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론
조선공산당의 국가건설 전망
❍조선공산당의 국가 구성
❍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조선인민공화국의 한계
❍조선인민공화국의 체제 구상
조선공산당과 노동운동
❍조선공산당과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전평)
❍신전술의 채택과 노동운동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로동당
❍남조선로동당
❍박헌영
참고자료
본문내용
1. 조선공산당의 정세 인식과 민주주의 혁명론
1.1. 정세 인식
1.1.1. 조선공산당의 정세인식에 대해서는 미국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입장과 소련의 국제노선을 수용한 결과라는 견해로 나눠지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대미인식이 좌익 내부에서 생산되고 하나의 방침으로 굳어지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조선공산당의 정세인식에 따른 전술 운용이 국가건설운동․대중운동의 전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점이 제기된다. 해방후 상황에서 미군정의 존재는 객관적으로 좌익운동․대중운동의 전망과 대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공산당의 정세인식은 해방후 당이 대중운동과 결합 또는 분리될 수 있는 하나의 지점이었다.
1.1.2. 조선공산당은 전후 미국과 소련이 평화와 민주주의 발전에 동일한 역할을 하며, 이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수립이 가능하다는 정세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공산당의 평화혁명론은 세계혁명에서 차지하는 소련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후 사회주의세력들의 소련에 대한 의존성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공산당의 인공 수립도 미군의 남한점령에 따른 다양한 정치적 상황이 고려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평화혁명론을 바탕에 두었다.
1.1.3. 평화혁명론에 따른 낙관적 전망은 대미․대미군정 협조전술로 나타났고, 이는 인공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국가건설운동, 사회주의운동과 대중운동의 기본적인 전술로 구체화되었다. 물론 조선공산당의 정세인식이나 평화혁명론이 미군정 자체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박헌영은 미군정에 대한 협력을 조건부 협력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조선공산당은 평화혁명론․협조전술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미군정에 대한 태도는 애매하였고, 미군정이 지방 점령정책을 실시하면서 인민위원회를 탄압 해체하는 상황에도 수세적으로 대응하였다.
1.2.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론
1.2.1. 조선공산당은 1945년 9월 20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8월테제’라 불리는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를 당의 정치노선으로 결정하였다. 조선공산당은 ‘8월테제’의 국제정세인식에 따라 소련과 함께 미국을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미소협력에 의한 평화적 정권수립을 전망하였다. 조선공산당은 지금과 같은 세계혁명 발전과정에서 조선과 같은 나라는 평화적으로 혁명의 성공이 가능하다는 실례를 보여주었다고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김무용, 『해방후 조선공산당의 혁명론과 국가구상, 그리고 노동운동』, 『진보평론』제 7호, 2001년
김무용, 『해방후 조선공산당의 노선과 조선인민공화국』, 『한국사학보』제 9호,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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