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초기 호족과 왕권
- 최초 등록일
- 2011.11.27
- 최종 저작일
- 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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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초기의 호족과 왕권’
(고려초기 왕권강화의 과정)
목차
1. 머릿말
2. 고려건국과 호족
3. 고려초기 왕권강화의 배경
4. 태조의 왕권강화
5. 혜종의 왕권약화
6. 정종의 왕권강화
7. 광종의 왕권강화
8. 경종의 왕권강화
9. 성종의 왕권강화
10. 왕권강화후 호족
본문내용
1. 머릿말
궁예의 휘하에 들어간 지 23년 만에 왕건은 궁예를 내쫒고 호를 ‘고려’라 하고, 도읍을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송악으로 옮겼다 이후 고구려 계승을 내세우고 발해 주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등 북진정책을 폈으며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통일 왕조를 세우는데 성공했다. 신라가 고구려 옛 영토의 대부분을 잃은 불완전한 통일을 이룩한 데에 비해, 고려는 후삼국과 더불어 발해의 고구려계 유민까지 아우르는 완전한 민족적 통일을 이루었다는 데에 의미가 깊다. 고려 초기에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으나, 지방 호족들이 왕의 명령을 잘 듣지 않는 등의 문제점도 있었다. 이러한 점들에 대해 대를 거듭하면서 역대 왕들은 호족들을 아우르고 국가의 발전과 왕권의 강화를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게 되는데, 태조를 비롯한 고려 초기의 호족과 왕권강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2. 고려 건국과 호족
호족은 신라 말에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하여 일정한 지역에 대한 행정적․경제적․ 군사적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던 독자적인 지방 세력이자, 사회변동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호족은 신라 하대에 골품제 사회의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진골귀족의 수가 크게 늘자, 진골귀족의 각 가계 사이에서 왕위를 둘러싼 정권쟁탈전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정권쟁탈전에서 패배한 진골귀족들은 권력에서 소외되어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몰락한 진골귀족은 지방의 연고지로 낙향하여 지방 세력으로 전환하였다. 이런 문제 이외에도 골품제도 자체가 지닌 문제점도 폭발하였다. 골품제도는 지방민의 중앙 진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었다. 이에 지방민들은 실력을 쌓아 그 지역의 실력자로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로서는 지방 세력이 유일한 출구였던 것이다. 그 결과 신라 말기에 이르면, 각 지역의 지방 세력들은 잠재적인 독립 세력으로 산재하고 있었다. 이들은 때가 오면, 언제든지 신라의 지배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시기는 바로 중앙 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될 때이다. 신라 말에 중앙 정부의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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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