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자와 편찬과정
- 최초 등록일
- 2011.10.07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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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자와 편찬과정
목차
Ⅰ. 삼국사기의 편찬
1. 편찬자
2. 편찬과정
Ⅱ. 일본서기의 편찬
1. 편찬자
2. 편찬과정
본문내용
1. 편찬자
『일본서기』편찬을 담당한 사람 중에서 가장 확실한 인물은 토네리친왕(舍人親王)이며, 그 이외에 키노키요히토(紀淸人) 등의 이름이 있으나 완성시의 상표문(上表文)이나 서문(序文) 등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편찬 사정을 알 수 없다. 친왕은 텐무천황(天武天皇)의 황자(皇子)로 당시 정1품위(正一品位)에 있었고 황실의 최 연장자로 황태자를 돕고 있었다. 편찬에 관련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그 해 8월에 우대신(右大臣) 후지와라노후비토(藤原不比等)가 병사하자 곧 지태정관사(知太政管事)에 임명된 것으로 보아, 당시의 정계에 있어서 중진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입장에 있었던 친왕이 편수를 담당한 것은 정부가 이 사업을 중요시한 증거이며 또 텐무천황 이래의 사업이었다는 점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일본서기』의 세부에 관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본문의 각 부분 상호 비교, 가요에 사용되어 있는 자음한자(字音漢字)의 용법 및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문장의 검토를 통하여 각권에 따라서 각각 특색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30권이 모두 다른 것이 아니고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으며 또 때로는 그러한 그룹 간에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구분론(區分論)”인데 단순히 구분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구분론의 전제는 각각의 권을 한 사람의 집필자가 아니라, 몇 사람의 집필자가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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