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초기 기년문제
- 최초 등록일
- 2011.10.07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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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사기 초기 기년문제
목차
1. 기년문제의 제기
2. 왕위계보 문제의 해결
3. 기년의 재조정
4. 기년 재조정의 의미
5. 맺음말
본문내용
2. 왕위계보 문제의 해결
1)일성이사금
혁거세(赫居世)의 적자인 2대 남해(南解)로부터 그의 태자인 3대 유리(儒理), 유리 여형제의 남편인 4대 탈해(脫解), 유리의 차남인 5대 파사(婆娑), 파사의 적자인 6대 지마(祗摩), 지마의 사위인 8대 아달라(阿達羅)에 이르기까지 계승관계 자체는 별 문제를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유리-파사의 사망간격 55년과 지마-아달라의 사망 간격 50년은 매우 긴 편이지만, 이것이 존재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7대 일성(逸聖)은 유리의 장자 외에 일지갈문왕(日知葛文王)의 아들, 유리왕의 조카, 지마의 아들 등으로도 전해져 혼선을 보이고 있다. 우선 그가 유리의 장자일 경우를 보면, 유리가 사망하고서 탈해 재위 23년간, 파사 재위 32년간, 지마 재위 22년간 등 총 77년이나 지난 뒤 일성이 20년간 재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그를 유리의 장자로 볼 수는 없다. 이러한 문제는 일성이 유리의 조카인 경우에도 발생한다. 또 일성은 지마의 딸인 박씨내례부인(內禮婦人)의 시아버지이므로, 그가 지마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따르기 어렵다.
이제 남은 가능성은 일성이 일지갈문왕의 아들이라는 것뿐이다. 그런데 일지갈문왕은 일성의 일성의 아버지 외에도 일성의 아들 혹은 일성의 외조부라고도 한다. 우선 일성의 외조부설은 일성이 유리의 아들임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이 가능성은 배제되어도 좋다. 다음으로 일지갈문왕이 일성의 아들이라면 동시에 아달라의 형제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상고기에 부왕을 이은 왕이 자신의 형제를 갈문왕으로 봉한 사례가 없고, 아달라대 기사에서도 일지갈문왕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에 일지갈문왕이 일성의 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참고 자료
이부오, “新羅初期 紀年問題에 대한 재고찰”, 한국고대학회, 1999
이희진, “《三國史記》 초기기사에 대한 최근 紀年調整案의 문제점, 역사학회, 1998
강종훈, “≪ 삼국사기 ≫ 신라본기 초기기록의 기년문제 재론, 역사학회,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