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을 둘러싼 혈통의 비밀
- 최초 등록일
- 2011.10.07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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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령왕을 둘러싼 혈통의 비밀
목차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무령왕의 출생
2. 무령왕의 계보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일본서기는 윤색된 부분이 많고 연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사료로서의 신뢰성이 적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학자 대부분에게 인정을 못 받고 있다. 그런데 무령왕릉이 발굴되면서 발견된 묘지석의 내용이 일본서기의 내용과 일치하여 일본서기가 사료로써 재조명되었고, 무령왕의 출생과 그의 계보에 대해 재검토하게 되었다.
Ⅱ. 본론
1. 무령왕의 출생
1971년 공주의 송산리고분군에서 무령왕릉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무덤 안에서 묘주인의 이름과 나이를 기재한 묘지석이 발견됨으로써, 『삼국사기』에 대한 신빙성이 다시 논의되었다. 『삼국사기』에서 무령왕의 이름을 사마(斯摩)라고 하였는데, 묘지석에서도 사마(斯麻)라고 하여 그의 이름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이 정확함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무령왕을 동성왕의 아들이라고 한 『삼국사기』의 기록과는 달리, 묘지석에서는 그가 523년 62세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어서 그가 출생한 해를 461년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출생연도를 알 수 있게 됨으로써, 종래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일본서기』의 무령왕에 대한 기록이 재평가되기에 이르렀다.
『일본서기』에 대한 무령왕의 출생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461년 여름 4월, 백제의 개로왕이 지진원(池津媛) 『일본서기』:458-07 웅략천황 2년, 백제의 지진원은 천황이 장차 동침하려는 것을 거스르고 석천순과 몰래 정을 통하였다. 천황이 크게 노하여 대반실옥대련에게 명하여 내목부를 시켜 부부의 사지를 나무에 펼쳐 임시로 만든 시렁 위에 올려놓고 불에 태워 죽였다.
참고 자료
-『전근대한일관계사』, 이영김동철이근우 공저,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2007.
-『공주 역사문화론집-무령왕 출생전승에 대한 논의』, 윤용혁, 서경문화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