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와 민속극
- 최초 등록일
- 2011.10.06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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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판소리와 민속극에 대한 전반적인 특징과 흐름, 주요작품에 대해 정리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관
1.1 판소리
1.2 민속극
2. 주요 작품
2.1 판소리 주요 작품
2.1.1 춘향가
2.1.2 적벽가
2.1.3 흥보가
2.1.4 심청가
2.2 민속극 주요 작품
2.2.1 봉산탈춤
2.2.2 통영오광대
본문내용
1. 개관
1.1 판소리
판소리는 직업적인 소리꾼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이야기를 말과 창을 교체해 가며 관중들 앞에서 구연하는 한국의 전통적 구비서사시이다.
‘판소리’라는 말은 ‘판’이라는 말과 ‘소리’라는 말의 합성어로서, ‘판’의 의미는 장면이나 무대 또는 여러사람이 모인 곳이라는 뜻도 있으나 판을 짠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판소리는 판을 짜서 부르는 소리를 말하는데 판을 짠다는 것은 사설과 악조 장단을 배합해서 작품을 구성한다는 의미도 있고, 소리를 하는 명창과 이를 구경하는 관중이 어울리는 소리판을 짠다는 의미로도 확대될 수 있다.
이처럼 판소리는 청중을 상대로 한 공연서사시로서 문학과 음악과 연극이 합쳐진 종합예술이다.
판소리는 호남지역의 무속을 배경으로 해서 발생한 예술로서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계승되고 아들 또는 남편인 남자 쪽은 굿을 거들기나 하는 악공 노릇을 했다.
판소리광대가 다른 고장에서도 나타난 것은 전라도의 판소리가 전파된 뒤의 일이다’.
대체로 판소리의 초기는 전라도 일대를 중심으로 시정에서 불리던 시기로서, 숙종 영조 연간이 되리라고 본다.
그 뒤 판소리는 급격히 전국으로 확산되어 정조 연간에 이르러서는 중앙으로 진출해 중인, 상인, 한량 등 서울의 중간층의 애호를 받고 우춘대, 하은담, 최선달 등의 명창을 배출했다.
특히 중인의 직품을 가지고 있거나 상인의 신분으로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서울의 중간층이 판소리를 애호했다.
그후 전(前) 팔명창이 활약하던 순조시대에는 판소리의 융성기로서 양반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작품도 <춘향가><심청가><흥보가>등 여러 가지로 그 종류를 늘려 갔던 때이다.
헌종, 철종대를 지나 고종대에 이르면 집권자인 대원군이 판소리를 좋아해서 많은 명찰을 배출되었는데, 이 시기가 판소리의 전성기인 후(後) 팔명창 시대이다.
이 때에는 판소리의 이론가이며 후원자인 신재효가 활동한 시기이기도 하다.
고종대를 지나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면 판소리는 위축되어 확대해가던 작품의 종류가 줄어들고 연행 기회도 적어지게 된다.
서울의 극장 등에서 창극화되어 연극으로 공연되는 등 구연형태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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