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 쁘와레의 배경과 상징
- 최초 등록일
- 2011.09.19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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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쁘와레는 엠파이어 스타일 이래 처음으로 코르셋을 없애고 20세기 모드의 기초를 만들었고 아름다운 직물과 색채를 의상작품에 도입하여 생동감있는 이미지를 표현한 디자이너이다. 쁘와래는 처음에는 몇몇 의상실에 자신이 직접 그린 스케치를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두쎄가 그를 고용해서 1896년 자자에서 연기를 유명한 배우 레잔느의 무대의상창작을 의뢰했다.
목차
1.뿔 쁘와레의 배경
Paul Poiret - 뽈 쁘와레
2.뽈 쁘와레의 상징
엠파이어 튜닉 스타일
기모노 코트, 호블 드레스
호블 스커트
미나레 튜닉 스타일
하렘 팬츠
강렬한 색조
튜뷸러 스타일의 튜닉
3.뽈 쁘와레가 활용한 소재
WOVEN FABRICS- 직물
CHIFFON- 쉬폰
SILK- 실크
LACE- 레이스
본문내용
쁘와레는 엠파이어 스타일 이래 처음으로 코르셋을 없애고 20세기 모드의 기초를 만들었고 아름다운 직물과 색채를 의상작품에 도입하여 생동감있는 이미지를 표현한 디자이너이다. 쁘와래는 처음에는 몇몇 의상실에 자신이 직접 그린 스케치를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두쎄가 그를 고용해서 1896년 자자에서 연기를 유명한 배우 레잔느의 무대의상창작을 의뢰했다. 그는 레잔느를 위해 검정색 망사로 된 매우 훌륭한 망토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후 쁘와레는 두쎄의 샵을 떠나 군에 입대한다. 쁘와레는 모드계에 복귀해서 워드와 함께 일하게 되는데, 러시아 출신의 한 고객이 쁘와레가 디자인한 망토를 보고 농담으로 러시아 농부들이 늘 입고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에 격분한 쁘와레는 그곳을 떠난다.1904년 자신의 샵을 열고 여러번의 이사 끝에 그는 생필립 뒤 룰거리에 정착한 최초의 꾸뛰리에가 된다. 그의 첫 번째 창작에서는 아직 혁신적 모드를 변형시키지 못했다. 단지 라인을 단순화시키는데 그쳤다. 그러나 그는 1906년 진정한 의복혁신을 감행했다. 제5집정관정부 시대의 영향에 의해 고무된 그는 전혀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스트레이트 라인에 허리위치가 가슴까지 올라오는 드레스였다. 부드럽고 섬세한 새틴을 주로 사용하여 만들어진 이 집정관시대의 드레스는 옷 가장자리를 말아 올려 작은 납을 나란히 배열한 결과로 아주 완벽하게 늘어뜨려지는 실루엣을 보였다. 완만하게 휜 콜셋은 이전의 S자형태를 버리고 이 적합한 의복형태의 개혁이 성공하는 이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참고 자료
[논문] Paul Poiret와 Gabrielle Chanel의 작품세계 비교 연구 -Haute Couture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 이윤정,Lee Yun Jeong , 복식문화학회 , 2003.01.01)
[도서] King of Fashion: The Autobiography of Paul Poiret (Paperback) ( Poiret, Paul , Harry N Abrams Inc , 2009.05.01)
[논문] 엠파이어 스타일 시대(1789~1820) 스펜서 재킷의 구성적 특징에 관한 연구 ( 최미경,Mi Kyung Choi,조진숙,Jin Sook Jo,최진희,Jin Hee Choi , 복식문화학회 , 200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