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회의 교육
- 최초 등록일
- 2011.08.09
- 최종 저작일
- 2011.07
- 3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3,000원
소개글
조선사회의 교육에 관한 내용 정리입니다.
목차
조선사회의 교육
1. 국가교육체제의 확립
성리학적 국가기반
관학교육의 정비
과거제도의 정비
국가교화와 유교적 예속
2. 사람의 성장과 사학의 발달
유학 지식인 사회의 성립
서원의 성립과 발달
조선 성리학의 교육이론
3. 사회문화체제의 위기와 향촌 교육의 확대
관학과 서원교육의 쇠퇴
향촌서당의 보급
전통의 지속과 개혁의 모색
본문내용
조선사회의 교육
1. 국가교육체제의 확립
성리학적 국가기반
고려말에 도입된 성리학은 조선시대에 와서 국가의 공식적인 이념체계로 작용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왕에서 천인층에 이르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적․사적 일상생활을 규율하는 구체적인 사회윤리를 제공하였다. 또한 그것은 사대부를 비롯한 지배층의 학문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은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① 우주 만물의 발생과 그것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설명의 체계로서 본체론 또는 우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의 본질을 결정하는 리(理)와 그것의 형체를 결정하는 기(氣)로 이루어져 있다.
② 본체론의 인간에 대한 적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심성론 또는 인성론
인간의 본성은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은 각각 리(理)와 기(氣)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결과이다. 본연의 성은 인․의․예․지로 대표되는 순선무구한 도덕적 본성을 가리키며, 기질의 성은 몸의 작용과 관련된 욕구나 정욕을 가리킨다. 그런데 기질의 성이 본연의 성을 에워싸고 있어서 그 가리운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성품과 행동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관학교육의 정비
억불숭유․숭유중도(유학을 높이고 그 가르침을 중하게 여긴다)라는 사회적 강령을 앞세운 조선왕조의 교육정책은 크게 볼 때 두 가지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① 관학을 정비하여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보다 적극적으로 양성하려는 관학 부흥책
중앙의 성균관과 사학(四學), 지방의 향교로 대표되는 관학을 정비하고 확충하게 되었다.
② 일반 민에 대한 일종의 문화적인 방식의 지배형태라고 할 수 있는 교화정책의 강화
교화는 사회에 유교적 예속을 부식함으로써 사회의 기강을 세우려는 국가 중심의 사회 지배정책이다.
중앙의 성균관은 조선왕조 최고의 학부로서 그 위상과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성균관은 우선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지배층의 교양과 사회적 습속을 바꾸기 위해서 성리학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이 주목되었다. 즉 조선초기에는 일종의 국가적인 학문연구기관으로서 성리학을 연구하고 사회적으로 보급하는 핵심적 기구의 역할을 관장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은 장자 국가를 이끌어 나갈 사회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 즉 양사(養士)였다. 이와 함께 조선왕조의 학제 속에서 최고학부로서의 위치는 정치의 관료를 양성하는 마지막 관문의 역할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던 만큼, 국가의 유교적 대의명분을 선양하고 유교적 예속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석전제로 불리우는 공자에 대한 제사를 위시한 각종의 의례행사가 열리는 장소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학교의 역할로서 강조되는 명인륜(인륜을 밝힌다)과 성인재(인재를 기른다)라는 명분은 교육기관으로서의 성균관이 지니는 이러한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균관의 구조가 크게 문묘와 학교라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점도 그 기능의 두 측면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문묘는 대성전과 동무, 서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에는 공자를 위시하여 유학의 발전에 기여한 선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학교는 명륜당과 동재, 서재로 이루어져 있는데, 명륜당은 유학의 경전을 가르치고 배우던 강당이며, 동․서재는 일종의 기숙사라고 할 수 있다.
성균관은 기본적으로 소과의 생원시, 진사시에 합격한 생원과 진사를 대상으로 하면서, 200명을 정원으로 하여 경학과 문학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성균관의 교육의 과정은 학령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학령은 조선 초기에 제정된 학교의 운영과 관련된 법령이자 학칙의 성격을 지닌 규정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