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유형원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11.05.18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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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상가 유형원에 대한 생애와 그의 사상에 대해서 작성하였습니다.
목차
1. 머리말
2. 시대적 배경
3. 유형원의 생애
4. 유형원의 사상
5. 반계수록에 담긴 토지제도 개혁 사상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대개 군자 되기를 자부하여 공부에 힘쓰고 과거를 거쳐 벼슬에 나서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유형원은 과거와 벼슬을 포기하고 온 가족을 이끌고 전라도 부안 땅으로 낙향을 한다. 피폐한 농업과 농민 현실을 직접 체험하며 진정한 선비의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유형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반계수록(磻溪隨錄) 26권을 지어 국가 제도의 정비를 논의하였는데, 부분적인 개혁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개혁을 주장함으로써 문제의식의 심층성을 보여 주었으며, 후일 이익, 안정복과 정약용에 이르는 실학의 기초를 제시하였다.
이 발표문에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생애, 사상 그리고 그의 반계수록에 담겨진 토지 제도, 교육 및 관리 선발 관직, 관리 임용, 관리의 봉급, 군사제도, 노예, 국가의 예제 중에서 토지 제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2. 시대적 배경
유형원이 살았던 시대는 1622년(광해군 14년)부터 1673년(현종 14년)까지로서 대략 17세기 중엽이었다. 이때는 7년 동안의 임진왜란을 겪은 직후였기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때였다. 더욱이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곧이어 병자호란이 터졌기 때문에 조선왕조는 그 허점이 드러났고 한계에 부딪쳤던 시기였다. 특히 양난으로 인하여 많은 인명이 살상되어 인구가 급격히 감소되고 유량하는 농민의 증가로 농토가 황폐화 되었다. 뿐만 아니라 토지대장이 유실되어 토지대장에 등록된 전결은 임난(任亂)전에 150만결이던 것이 50만결로 격감되어 경작지가 줄어들었으며 토지제도가 문란해져 국가의 재정이 파탄상태에 직면하였다. 또한 권문세가의 토지겸병은 더욱 심해졌으며 민생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으며 사회기강이 해이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한국철학사연구회 지음,『한국 실학 사상사』, 다운샘, 2002.
· 정옥자 외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 조선 선비들의 사상.철학 그리고 삶』, 효형출판, 1998
· 송보영, 『반계 유형원의 사회개혁사상 연구』, 성균관대유학학원, 2001
· 윤혜성 『반계 류형원의 정치사상: 반계수록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원, 1986
실학의 제일조(第一祖)
-반계 유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