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위대한만남]
- 최초 등록일
- 2011.04.13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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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민대학교 조직과 인간 레포트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 [송복 저] 독후감 입니다.
목차
1) 서애 유성룡
2) 10만 양병론의 실체 - 붕당정치의 폐단
3) 대한민국의 유성룡과 이순신
4) 대표적 저서 『징비록』에 대한 고찰
본문내용
1) 서애 유성룡
호는 서애,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로 군무를 총괄, 이순신, 권율 등 명장을 등용하였던 문신 겸 학자였다. 이조판서,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 등 주요관직에 두루 봉해졌으며, 군사학에도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저서에는 서애집, 징비록 등이 있다.
2) 10만 양병론의 실체 - 붕당정치의 폐단
10만 양병론은 율곡의 사상으로 익히 알려져 있으며, 또한 그것을 실행했으면 임진왜란을 효과적으로 대응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10만 양병설은 율곡의 어느 글에도 없다. 상소문에도 없고, 서간문, 경연일기를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의 비문과 제자들이 편찬한 율곡연보에만 전할 뿐이다. 즉, 특정 당파의 사상적, 규범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되었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된다. 남인 세력에 있던 류성룡과 서인 세력 이었던 율곡 이이의 입장은 서로 상반된 결과를 초래한다. 우선 통신사로서 일본 침략 가능성을 보기 위해 함께 출발했던 동인과 서인은 결국 그 시절 더 큰 힘을 가진 동인의견에 의해 서인 의견이 묵살 당한다. 하지만, 결국 서인 의견처럼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해 왔다. 이후 남인, 동인 등은 선조를 보필하며 피난길에 오른다. 추후 논공행상을 함에 있어 서인이 더 우대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붕당정치의 폐단과 승자의 기록은 TV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악한 장희빈에게 빠진 숙종이 어질고 정숙한 인현왕후를 내치고, 그로인해 민심이 어지러워져, 다시 숙종이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쳐 인현왕후를 불러들인다. 마침내, 사악한 장희빈은 사약을 받아 숨을 거둔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승자의 역사이고 또한 왜곡된 진실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