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상공업 화폐제도 개혁론에 대하여 여러 논문들을 종합 발췌하여 정성들여 작성한 레포트 입니다
17세기 18세기 19세기 시대상황에 따라 실학자들의 개혁론을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Ⅰ.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상공업 개혁론
1. 17세기 상공업 현실과 사정
2. 17세기 상공업 개혁론의 대두
▶ 유형원 [柳馨遠, 1622 ~ 1673]
▶ 이익 [李瀷, 1681 ~ 1763]
▶ 유수원 [柳壽垣, 1694 ~ 1755]
3. 18세기 상공업 현실과 사정
4. 18세기 상공업 개혁론의 대두
▶ 박지원 [朴趾源, 1737 ~ 1805]
▶ 박제가 [朴齊家, 1750 ~ 1805]
5. 19세기 상공업 현실과 사정
6. 19세기 상공업 개혁론의 대두
▶ 정약용 [丁若鏞, 1762 ~ 1836]
Ⅱ.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화폐제도 개혁론
1. 17세기 화폐제도 현실과 사정
2. 17세기 화폐제도 개혁론의 대두
▶ 유형원 [柳馨遠, 1622 ~ 1673]
▶ 이익 [李瀷, 1681 ~ 1763]
▶ 유수원 [柳壽垣, 1694 ~ 1755]
3. 18~19세기 화폐제도 현실과 사정
4. 18~19세기 화폐제도 개혁론의 대두
▶ 박지원 [朴趾源, 1737 ~ 1805]
▶ 정약용 [丁若鏞, 1762 ~ 1836]
본문내용
1. 17세기 상공업 현실과 사정
왜란 전 조선의 경제 발전은 농업 생산력 향상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 생산력 향상에 힘입어 중소지주층이 양반관료층으로 성장하면서 정통적 성리학에 입각한 사회질서를 조정에서 향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구축했다.
이 정연한 질서가 왜란으로 인해 깨졌다. 왜란 후 조선의 경제 변화는 사회유동성을 더욱 늘리는 상업 발달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중국과의 사이에도 사(私)무역이 자라나 공(公)무역을 능가하게 되었고, 관영(官營)에 얽매여 있던 수공업도 시장을 상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밭에서도 상품작물의 비중이 커졌다. 상업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그에 종사하는 인구도 늘어났다. 육의전(六矣廛)을 중심으로 관청의 통제를 받던 조선 전기의 상업 제도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상업 팽창이 17세기 이후 계속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국가 체제는 농본국가의 틀을 바꾸지 않았다. 모든 정책은 농업 위주로 논의되었고, 상업 활동의 확대는 억눌러야 할 병리적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위정자들은 인구 감소와 농민의 유망(流亡)을 늘 걱정했는데, 그중 상당수는 상업 활동으로의 이동이었다. 상업을 국부(國富)의 새로운 원천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따라서 상업 발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적극적 정책이 없었다.
2. 17세기 상공업 개혁론의 대두
▶ 유형원 [柳馨遠, 1622 ~ 1673]
(1) 종래의 규정대로 상공업자를 등록케하여 수세한다.
(2) 임시로 징발되는 임시 요역의 폐를 시정하기 위하여 상공인의 신역세인 장인포를 첨가 하여 부과한다.
(3) 지방의 상시는 폐지하고 상설점포를 설치한다.
(4) 상공업의 미발달 상태에 비추어 공장, 상매에게 농민수전의 절반인 50무를 지급하여 반 농·반상공으로 육성한다.
참고 자료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연세실학강좌Ⅳ』, 혜안, 2003
최희남, 『정다산의 경제윤리사상』, 김영사, 2007
한국철학사연구회,『한국실학사상사』, 심산출판사, 2008
안병욱, “조선후기 대동론의 수용과 형성”, 한국역사연구회, 2003
윤우경, “연암 박지원의 사회·경제사상”,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1999
이훈섭, “다산정약용의 상업정책론에 관한 연구”, 한국전통상학회, 1998
이훈섭, “<우서>의 상업경영론 연구”, 한국전통상학연구, 1989
정재화, “<우서>에 나타난 유수원의 상업관에 대한 일고찰” ,경성대학교교육대학원, 2000
조일남, “조선후기 실학의 상업관에 관한 연구 -박제가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