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주 목사의 성서해석
- 최초 등록일
- 2010.11.30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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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길선주 목사의 말세학을 중심으로 성서해석 방법론에 대한 연구 고찰
목차
생애와 사상
설교의 원리
말세학에 나타난 성경관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2. 생애와 사상 길선주 목사는 1896년 3월 15일에 안주성내 후장동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선주이고 자는 윤일이며 도호는 영계이다. 당시의 사회상은 극도로 부패한 반상제도와 내리막길을 달리는 국가나 사회상은 그야말로 이조의 최후를 고하는 시기였고, 안주 사회 또한 그런 민족적 비극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부패와 횡포가 동반되었던 터라 민중의 원한과 저주가 사무쳤고, 곳곳에서는 도적떼가 횡횡했고, 반항의 무리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일어나 사회 질서는 그야말로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극히 혼란에 빠졌다. 그는 28세 되던 1897년에 기독교에 입교하기 까지는 한학수학, 선도수양, 의학연구들의 인생경험을 거쳤다. 그가 1903년에 평양에 있는 예수교장로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로서의 훈련을 받고 1907년에 신학교 졸업과 동시에 목사안수를 받고 장대현 교회 목사로 취임하면서 그의 본격적 목회생활과 부흥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는 이미 1907년의 대 부흥 운동 때에 크게 활약한 바 있었다. 그 후로 길선주목사는 1935년 11월 18일부터 있었던 평서노회 사경회를 인도하였고 마지막 날 새벽기도회에서 쓰러질 때까지 28년간 당시의 상황과 인물로서는 이룩하기 어려운 실적을 남기며 복음 선포에 헌신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20년간 장대현교회의 담임목사로 있으면서 전국 교회의 부흥사경회를 인도하였고, 2만 번 이상의 설교를 하였으며, 그의 설교를 듣는 자도 380만 명이었으며, 그를 통해 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3천명이고 그가 설립한 교회도 60여 곳에 이르고 있다. 교회 기관 중에서 평양교회 부인 연합 전도회, 평양교회 전도회, 평양교회 노동 전도회, 평양교회 노인경건회 등을 조직하였으며, 교회내의 특수기관으로 심방대를 조직하고 구역제도와 심방대의 조직을 창시하여 전국교회에 확산 보급하였고, 음악대를 중심으로 전도대를 활동시켰으며, 전도회를 남녀별로 조직하였고, 노동 전도회를 조직하고, 노인 경건회의 개인전도와 전도대를 조직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