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재평가, 그리고 노무현
- 최초 등록일
- 2010.11.30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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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광해군이 어떻게 평가됐었고 또 어떻게 재평가 되고 있는지 알아보고고 사실에 근거해 그 평가가 타당한지 알아봤습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공통점을 찾아 두 인물을 분석했으며 광해군이 주는 교훈으로 마무리 지은 글입니다.
인터넷이 아닌 문헌들을 다수 참고해 작성했고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목차
1. 서론
2. 광해군 평가의 극과 극
3. 패륜아인가 탁월한 외교가인가
4. 광해군을 닮은 노무현
5. 결론-광해군이 주는 교훈
본문내용
1. 서론
제가 조사 대상으로 광해군을 선택한 것은 광해군이 과거와 현재의 평가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이라는 것이 흥미로웠고 또 광해군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지금 우리의 현실에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광해군은 묘호에 조나 종이 붙지 못하고 군으로 남은 불우한 군주입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난 그의 삶은 극적인 것으로 역사적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가 한번쯤은 반추해 볼 만한 역사적 교훈들을 무수히 지니고 있습니다.
아직도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기존의 부정적인 평가와 최근의 긍정적인 평가가 공존하고 있으며 양 측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본론에서는 광해군의 상반된 평가를 알아보고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여 그를 평가하고자 합니다.
2. 광해군 평가의 극과 극
광해군은 1623년 3월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는데 ‘반정(反正) ‘반정(反正)’은 중국의 고전인『春秋』나『史記』등에 보이는 `撥亂世反諸正(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 바른 세상으로 돌이킨다)‘이란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이라는 말 자체에 광해군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담겨있습니다. 광해군을 쫓아낸 반정군은 폐모살제(廢母殺弟), 명국배신(明國背信)등의 이유로 광해군을 몰아냈다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하였고 이후 광해군은 ’혼주(昏主)’, ’폐주(廢主)’등이라 불리며, 왕위에서 쫓겨난 이후 계속해서 이러한 부정적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다 광해군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지는데 그 초석을 놓은 사람은 일본인인 이나바 이와기치(稻葉岩吉)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광해군시대의 만선관계』(1933)에서 광해군을 명과 후금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중립을 지켜 조선을 구해낸 ‘택민주의자(澤民主義者)’라고 찬양했으며 오히려 후금을 공격하자고 했던 서인들을 명분론자(名分論者)라며 비판했습니다.
이나바는 만선사관론자(滿鮮史觀論者)로 식민사관의 입장에서 조선사의 자주성을 부인하고 일제의 만주침략을 옹호하기 위해 광해군을 띄웠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데, 이러한 점에서 그의 평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나바의 평가는 이병도를 비롯한 한국인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어 이후 광해군은 ‘중립 외교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역사 교과서와 개설서 등에 반영되기까지 합니다.
참고 자료
이기백 책임편찬,『한국사 시민강좌』31집(실패한 정치가들), 일조각, 2002
김인호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이야기2』 도서출판 자작나무, 1999
한명기,『광해군』, 역사비평사, 2000
윤종영,『역사의 아웃사이더』, 혜안, 2006
조여항,『정인홍과 광해군』, 동녘, 2001
김기홍 박종기 신병주,『제왕의 리더쉽』, 휴머니스트, 2007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