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아닌 안타깝게 요절한 천재문인 `허경번당`으로 다시 보기
- 최초 등록일
- 2010.11.29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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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허난설헌에 대해서 논의할 때면 항상 수식어로 붙는 것이 바로 `비운의 여류시인`다. 남편과 시모와의 불화와 자녀들의 요절, 그리고 여인로서의 한계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허난설헌의 상황을 외면하고 그녀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현재의 논의는 허난설헌을 비운의 여류시인으로서만 부각시켜 그녀의 문학적인 업적을 가리운다는 것이 문제다. 허난설헌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여자로 태어난 힘든 삶을 살았던 인물로는 알고 있지만 그녀의 시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목차
I. 서론
II. 본론
1. 임진왜란 전의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
2. 한 인간으로서의 고통
3. 올바른 호칭
4. 허씨 5문장가
III. 결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허난설헌에 대한 기존의 연구에는 그녀가 여성들의 지위가 낮았던 고압적인 유교사회에서 살았던 것으로 나와있다. 하지만 조선조의 성리학에 기초한 남존여비의 가치관은 임진왜란 이후에 널리 보편화 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때문에 실제 허난설헌의 시대의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고찰해보도록 할 것이다. 또한 어느 기록에도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은 그녀의 죽음이 무엇으로 촉발되었는지 그녀의 고통을 통해 생각해보도록 할 것이다. 난설헌은 그녀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호`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경번`이라는 명을 지어서 썼다고 한다. 그녀 이외의 사람들이 그녀를 경번으로 부르는 것 또한 여러 기록에서 드러난다. 때문에 과연 그녀를 난설헌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따져볼 것이다.
II. 본론
1. 임진왜란 전의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
흔히 조선시대는 성리학적인 가치관을 기반으로 가부장적이고, 남존여비의 사상이 만연한 사회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는 조선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실제 조선전기는 고려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상황으로 성리학적 가치관이 확고히 뿌리내리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성리학을 공부한 사림파가 정계에 활발히 진출하며 성리학적인 가치관은 조선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었고, 그것은 근대까지 이어져 내려와 현대에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실정이다.
허난설헌은 1563년에 강릉 초당의 선조 때 명망이 높았던 초당공 허엽의 여섯 자녀중 3녀로 태어났다. 허엽은 동인(東人)의 영수(領袖)를 지냈던 인물로 누구보다 성리학적 가치관을 확고히 가졌을 것이다.
참고 자료
1. 네이버 백과사전
2. 위키피디아
3. 장정룡, 허난설헌 평전(2007), 새문사
4. 천화숙,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과 신사임당-임진왜란 이전까지, 역사와 철학 31집
5. 허미자, 『허난설헌 연구』, 성신여대출판부,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