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bert
- 최초 등록일
- 2010.09.23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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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schubert프란츠 피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1797.1.31~1828.11.19)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슈베르트는 샘솟는듯한 아름다운 선율에 로맨틱하고도 풍부한 정서를 지닌 이채로운 작곡가였다. 19세기 독일 낭만파 음악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인 그는 국민 학교 교장의 4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11세때는 빈 궁정 예배당의 소년 합창단 단원으로서 음악 생활을 시작하였다. 13세에 작곡을 시작하였고, 15세에는 최초의 서곡을 썼다. 16세에 교향곡을 작곡한 이래 계속하여 교향곡 2,3번, 가곡 [실 잣는 그레첸][마왕(Erlkonig)][들장미] 등을 작곡하였는데, 18세 때까지는 모두 140곡이나 되는 아름다운 가곡을 썼다. 슈베르트는 성가대 훈련소 시절부터 음악 이론도 겸해서 배웠는데, 베토벤에 대하여는 그 당시부터 일생을 통해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슈베르트는 1813년, 16세부터 그의 아버지를 도와 보조 교원으로 3년간 일한 외에는 아무런 공직도 없이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목차
♪슈베르트의 생애
♪신학교에서 자유로
♪다작에서 활동정지로
♪성악(극작품)곡의 탐구
본문내용
병이 그에게 최초의 타격을 준 1823년, 슈베르트는 긴 병원생활을 했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으며 점차 심해지는 두통은 결코 고쳐지지 않았다. 짖궂게도 대중의 지지를 확인해주는 표시인 최초의 영예가 그에게 찾아왔다. 예술가이자 문예애호가인 프뢸리히 Fro..hlich 자매가 슈베르트를 악우협회(창립 1813)에 소개한 것이다. 1825년 그는 협회의 보결회원이 되었고 2년 후에는 정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말년에는 슈베르트의 이름이 연주회의 프로그램에 롯시니에 이어서 두 번째의 빈도로 나타나게 된다. 그의 뒤에는 모짜르트, 그리고 베토벤의 순이었다. 1823년 봄에 슈틸리 음악협회의 회원으로 뽑힌 그는 감사의 정표로서 요제프 휘텐브렌너 Josef Httenbrenner의 중개를 통하여 교향곡 b단조의 처음 2악장을 보냈으며 스케르쪼의 미완성 제2페이지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에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직 빠져 있었다. 그것은 가장 광범위한 대중의 평가를 그에게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극작품에서의 성공으로 몇 해 전부터 그는 이것을 추구해왔으나 그때까지 얻지 못했던 것이다. 마지막의 가장 장대한 모험인 피엘라블라스 D. 796를 작곡한 해인 1823년까지 작곡한 112편이나 되는 오페라 또는 징슈필 가운데에서 쌍둥이형제 D. 647만이 1820년 6월 케른트나틀극장에서 6회 공연되었을 뿐이었다. 다음해 여름에는 장르를 혼합한 스텍터클 마법의 수금을 초연하게 되며 이 작품으로 인해서 슈베르트가 작곡한 음악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탄할 만한 것으로 판단되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시끄러울 뿐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 작품이 현재의 〈극장용 작품〉이라고 불리는 것의 원형이며 동시에 모짜르트의 거의 동명작품에 이어지는 통과의례적(通過儀禮的) 작품이다. 이 아름다운 서곡(D. 644)은 후에 슈베르트에 의해서 로자문데의 서곡으로 다시 사용되었고 1827년에 이 제목으로 출판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