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암 박지원의 생애와 실학사상
- 최초 등록일
- 2002.05.31
- 최종 저작일
-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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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연암 박지원의 생애
2. 연암 박지원의 실학사상
1) 실학의 형성배경
2) 실학의 성격과 구분
3) 연암 박지원의 실학사상
본문내용
연암 박지원(1937~1805)은 문장가이자 사회사상가로서 당대의 지식인 사회를 주도한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정통 노론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이 청빈하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그의 공부에 특별히 신경을 쓸 형편이 못 되었다. 본격적인 공부는 그의 나이 16세(1752)에 이보천의 사위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보천은 어유봉의 수제자이자 사위였으므로, 연암은 노론 낙학파의 정맥을 이은 셈이다. 따라서 철학사적으로 그는, 위로는 낙학파를 계승하여 북학파를 형성하고, 뒤로는 그의 손자 박규수를 통하여 개화사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성장하고 활동하던 18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의 시기는 성리학적 이상 국가 이념과 동아시아 중심의 세계관에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조선 내에서 엄격한 계급질서가 흔들리면서 한편으로는 상공업이 성장하고 있었고, 중원에서는 이미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고 동아시아의 질서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구의 문물은 청나라를 통하여 조선에도 전해지고 있었다.
연암은 노론 낙학파의 명문에서 태어났지만 당시 서울 지역의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색당파를 초월하여 여러 지식인들과 교류를 가질 수 있었다. 그는 혈연관계로 보자면 당시의 집권세력과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벌열과 사(士)의 분화과정에서, 실제로는 권력층으로부터 소외된 지식인들 중 하나였다. 이러한 중간적 위치에서 그는 중앙권력에 접근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기를 즐겼다. 그는 특히 중인이나 서얼출신의 사람들과도 깊은 관계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활발하게 변화해 가는 서울의 개방적 흠름
참고 자료
김인규, "북학사상의 철학적 기반과 근대적 성격", 다운샘, 2000
김지용,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한양대학교 출판원, 1994
차용주 편, "연암연구", 계명대학교 출판부, 1984
한국사상사연구회 편, "실학의 철학", 예문서원,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