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고한 탄광촌이야기
- 최초 등록일
- 2010.09.09
- 최종 저작일
- 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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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북고한 탄광촌이야기
목차
1. 박정희정권기의 산업화와 탄광노동
2. ‘사북사태’에서 카지노까지
【참고문헌】
「폐광촌에 영그는 〈카지노의 꿈〉」 (조선일보 1997년 4월 2일)
● 연 1백억원 수익, 2천5백명 고용 기대.
● 지장산․만항․고토일 후보지 거론.
본문내용
박정희 전(前)대통령의 말처럼, ‘기아선상’에 허덕이던 자본주의 산업화시대 겨울 추위와 ‘연탄가스’의 으스스함 속에서도 광 한 켠을 차지한 연탄 100장, 200장이 80년대 소비자본주의시대를 가져올 수 있는 한국인의 힘이 되어주었다. 탄광노동자들은 이제 사라져 가고, 탄광촌은 ‘카지노’와 ‘관광지’로 변해가고 있다. ‘개발’과 ‘발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관광산업’에 호기심을 가지고, 여가생활을 즐기며, 한편으로는 ‘지적 흥미’도 가질지 모른다. 하지만, 사북․고한지역 탄광촌 사람들의 삶은 과거사로 잊혀져 가고 있다. 탄광촌에서 카지노를 비롯한 관광산업으로의 변화가 이 작은 지역사의 종착점은 아닐지 모른다.
1. 박정희정권기의 산업화와 탄광노동
1960년대 이후 사북, 고한지역 탄광 개발의 역사와 광부의 삶은 한국 산업화의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1965년에는 연간 석탄생산량이 최초로 1천 만 톤을 상회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와서는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을 맞아 석탄산업은 새로운 중흥기를 맞게 된다. 유가파동이 국내 석탄생산량의 증진을 재촉하면서, 석탄산업계는 이때부터 제2차 석유파동시기까지 국내 산업의 위기를 극복해 주는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다. 경제 개발 시기 전력의 부족은 석탄에 의한 화력발전에 의해 해소되었고, 1․2차 석유위기에 따른 원유가의 상승은 국제수지 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기였지만, 석탄의 증산을 통한 수입대체효과를 통해 석유위기 속에서도 한국 경제의 성장이 지속될 수 있는데 이바지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서 12월 31일 “석탄개발에 관한 임시 조치법”을 제정하여 석탄산업 육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에 따라 소규모 민영 탄광들이 대단위 탄좌로 통합되면서 현대적인 채탄설비를 갖출 수 있었고, 생산량도 급속히 늘어났다. 동원탄좌가 같은 해 4월에 설립되고, 삼척탄좌(삼천리연탄)는 대한생명에 의해서 12월에 설립되었다.
참고 자료
김창완. 「80년 봄 사북사건」, 정선지역발전연구소, 2000.
김무용. 「1980년 사북노동자 항쟁의 이해와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