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통제권이양 , 과연 적절한 시기인가?
- 최초 등록일
- 2010.08.22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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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12년에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오게 되어있는
전시작전통제권에 관한 레포트 입니다.
작전통제권의 이양, 과정, 최근까지의 논란과
결론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의 이양은 시가상조라는 것이
이 레포트의 논지입니다.
목차
1.작전통제권의 이양
2.이양 이후, 90년대까지의 작전통제권
3.최근까지의 논란, 그리고 이양과정
4.전시작전통제권 이양에 대한 생각
본문내용
1.작전통제권의 이양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낸 공식서한(public letter)에서 한국의 육•해•공군의 지휘권(Command Authority)을 맥아더 장군 또는 맥아더 장군이 위임한 기타 사령관에게 이양(assign)한다고 밝힘으로써 작전지휘권의 일부인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이 유엔 사령부에 귀속되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편지에는 단순하게 한국 3군에 대한 지휘권 이라고 쓰여 있는데, 맥아더 장군은 이를 “작전지휘권(Operational Command Authority)”으로 수정하여 회신했다. 이렇게 이양된 작전지휘권은 1954년 11월 17일 발효된 한미 상호방위 조약과 그 후 개정된 한미 합의의사록(合意議事錄)에는 작전통제(Operational Control)라는 용어로 변경되었고, 유엔군 사령부에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이 귀속되었다. 한국이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부에 이양한 것은 미국의 완전한 개입에 의해 안보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이다.
2.이양 이후, 90년대까지의 작전통제권
1960년대에 들어와서 작전통제권의 일부가 유엔군으로부터 한국군으로 이양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61년 5월 1일 이후 한국군의 일부 예비사단 및 공수특전사, 헌병대, 수경사 산하 경비단 등에 대한 적전통제권이 한국군에게 이양되었고, 65년 한국군의 월남 파병이 결정된 이후 파월부대에 대한 미군의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되었으며, 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에 의한 청와대 습격사건(일명,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대간첩 작전의 통제권 또한 한국군에 이양되었다. 이 무렵, 한미 간의 주요 쟁점사안인 주둔군지원협정(SOFA)이 1967년 2월 발효되었다.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군사령부(Combined Force Command)가 창설되었다. 이후 한미연합사령관(유엔군 사령관 및 주한미군 사령관 겸임)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보유하게 되었지만, 연합사령관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때에는 한국군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였다. ‘동등한 참여’란 한미 양국의 협의 하에 작전통제권이 행사되는 것으로서, 한국이 절반의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탈냉전 이후의 변화된 안보환경과 한국의 국력신장을 바탕으로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슬로건으로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노태우 후보가 ‘작전권 환수’를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작전통제권 전환은 점차 한미 간의 현안으로 부상되었었다. 미국 또한 “주한미군의 역할을 주도적 역할에서 지원적 역할로 전환해 나가겠다.” 라는 목소리를 내며 작전통제권 환수 논의에 한층 힘을 실어줬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노태우 정부는 1995년, 김영삼 정부는 2000년을 환수 목표로 설정하였었다.
참고 자료
이대우 저, 『국제안보 환경변화와 한미동맹 재조정』, 도서출판 한울, 2008
정욱식 저, 『동맹의 덫-지독한 역설:두 개의 코리아와 미국』, 도서출판 삼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