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산업혁명
- 최초 등록일
- 2010.08.09
- 최종 저작일
-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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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러시아의 산업혁명
목차
18세기의 농업
19세기의 러시아, 농노해방
러시아의 서구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18세기의 농업
18세기 후반 봉건경제는 발전하는 시장경제와 전면적으로 충돌했다. 전 러시아 시장의 창설과 적극적인 국제무역 참여는 결정적으로 농업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주들은 사치품 구입, 저택 건설이나 기타 비생산적인 지출을 위해 자신들의 영지에서 더 많은 돈을 손에 넣으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영지에서는 농민에 대한 착취가 더욱 심화되었다. 지주들은 흑토지대에서 부단히 부역의 규모를 증대시켜, 일주일에 6일까지 일하게 되었다. 1770년대에 지주들 중 일부는 ‘메샤치나’ 방식을 채택했다. 즉 농민들에게서 분여지를 거두어들임으로써 그들을 지주의 토지에서 일하도록 강제했고, 이에 대한 대가로 그들에게 매월 현물을 지급한 것이다.
지주에 대한 농민들의 개인적인 예속이 심화되어 1736년 칙령에 따라 지주들에게 자신들의 재량에 따라 탈주 농민에 대한 처벌 조치를 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그 후 1760년에 엘리자베따 빼뜨로브나가 칙령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라 지주들은 죄를 지은 농민들을 시베리아로 추방하거나 군대에 징집시킬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다. 농민들은 순종적인 노예가 되었고, 지주들은 그들을 가족과 분리해 개별적으로 매매하며, 카드놀이로 잃고, 말이나 순종 견공과 교환하거나 죽을 때까지 채찍으로 때릴 수 있었다.
18세기 후반에 경작이나 농산물 재배의 새로운 방식들을 서서히 도입했다. 가장 선구적이고 교육을 받은 지주들은 신기술을 활용하고 농학의 성과를 생산에 접목하려고 노력했다. 1765년 ‘러시아에서 경작이나 주택건설의 장려에 관한 자유경제협회’의 설립은 이를 촉진시켰다. 새로운 성과를 생산에 도입함으로써 점차 노동생산성이 향상되고 생산물의 상품성이 증대되는 등 생산물의 시장진출 수준은 증대되었지만, 농민의 농노적 예속은 조금도 완화되지 않았다.
참고 자료
『러시아 경제사』, 따찌야나 미하일로브나 찌모쉬나(이재영 역), 한길사, 2006
『서양 문명의 역사Ⅳ』, 에드워드 맥널 번즈 등(손세호 역), 소나무,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