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의난과 민란
- 최초 등록일
- 2010.06.21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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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란- 삶을 위한 경제적 농민의 투쟁으로서의 항쟁
홍경래 난의 배경
목차
Ⅰ. 머리말
Ⅱ. 민란- 삶을 위한 경제적 농민의 투쟁으로서의 항쟁
Ⅲ. 홍경래 난
1. 홍경래 난의 배경
2. 홍경래 난의 준비 과정
3. 홍경래 난의 시작
4. 정부군의 반격과 송림전투의 패배
5. 정주성 농성
6. 홍경래 난의 역사적 의의
7. 홍경래 난의 여파
Ⅳ. 맺은말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19세기는 저항의 시대, 민란의 시대로 불릴 만큼 농민의 사회적 역할이 컸다. 이러한 움직임은 18세기인 영• 정조 시기에도 있었지만 이들이 조직화 되어 민란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19세기 초기부터였다. 조선왕조를 유지하고 있었던 유교적 봉건체제는 민중에 의해 끊임없이 도전을 박았으나, 당시 지배층은 사회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보다는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구체제를 고수하고자 하였다.
조선 후기 농업 생산량의 향상에 따른 해택은 일부에게만 돌아갔다. 토지를 떠나는 농민들이 늘어났으며 농촌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농민들은 탐관오리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 할 능력이 없었다.
Ⅳ. 맺은말
조선 후기는 부정부패와 경제적 수탈 등으로 농민들은 살기 힘들어졌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심지어 과거 시험의 부정부패에 대한 가난한 선비들의 불만도 커지게 되고 이들의 선동으로 사회적 불안도 고조 되어갔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당시 농민들을 비롯한 일반민들의 체제에 대한 도전은 더욱 결렬해져 갔다. 사회적 문제를 그들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이에 소극적인 경제 투쟁에서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 하여 그들의 생존권을 지키고자하였다.
민란은 농민들의 높은 참여 열기, 경제적 수탈에 대한 생존을 위한 경제적 투쟁으로서의 성격이 반봉건을 지향하고 있다는 면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이래 진행되어 온 반봉건 농민항쟁의 총결산이자 근대 민중항쟁의 출발점으로서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탐관오리의 제거, 봉건적 폐단의 시정, 봉건제도의 폐지, 그리고 멀리 나아가 친일정권의 타도와 식민지화의 저지로 운동과 사상을 단계적으로 발전시켜나갔다.
민중항쟁은 한 뜻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다양한 농민항쟁을 통해 농민층은 성장되었고,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아래로부터 변혁의 길을 전망케 하는 것임과 동시에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36』, 1998.
고석훈,『민란의 시대 - 조선시대의 민란과 변란들』, 가람,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