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광섭의 모든것
- 최초 등록일
- 2010.06.11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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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나긴 시의 여정과 원숙
-김광섭-
1. 들어가며
요즘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시들은 기존의 형식을 깨뜨리거나 어떻게 하면 시를 읽는 사람을 더 자극할
2. 생애
이산 김광섭(1905~1977)은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비교적 여유 있게 자라났으나 조부의 사망과 함께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북간도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3. 이산의 시세계
이산 김광섭은 우리 문학사에서 드물게 긴 문학 활동을 했던 분으로 기억할 수 있다.
1938
대동인쇄소
『동경
3) 후기
김광섭 시인이 심혈을 기울여 경영하던『자유문학(自由文學))』지가 경제적 사정으로 폐간되고, 1965년 7월 19일 공보비서관으로 모시던 이승만 대통령이 별세하자 김광섭 시인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결국 뇌졸중으로 쓰러졌지만 그는 이 와중에 병마와 싸우며 틈틈이 시를 써 『성북동 비둘기』를 비롯한 시집들과 시선집 등을 내놓았다. 이 시기의 시들이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일단 문학성이 돋보이며 시가 관념적이기 보다 친근하고 따뜻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교과서나 국어 문제집에도 이 시기의 시가 많이 실려 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생애
3. 이산의 시세계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요즘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시들은 기존의 형식을 깨뜨리거나 어떻게 하면 시를 읽는 사람을 더 자극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거기에 조금 질린 나는 햇수가 조금 오래된 연식있는 시를 택하기로 했다. 그러는 중에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를 보게 되었는데 시가 내 마음에 쏙 들어서, 수능 공부할 때는 무심코 문제만 풀고 지나갔었던 이 사람의 시를 조금 더 열어 보았다.
2. 생애
성북동 68-34번지 자택에서
이산 김광섭(1905~1977)은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비교적 여유 있게 자라났으나 조부의 사망과 함께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북간도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귀향했다.
김광섭은 제일고등학원 2학년 때 조선인 동창회가 발행하는 『알(卵)』지에 시 「모기장」을 발표하였는데, 이 시의 발표로 그는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로 인연하여 시에 전념할 것을 결정하였다.
27세(1932년) 때 김광섭은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봄에 중동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는데, 그는 학생들에게 애란의 민족문학을 소개하면서 민족정신과 항일 사상을 고취시키는 한편 「극예술연구회」에 가담하여 함대훈, 이헌구와 함께 극단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김광섭의 영향으로 중동학교의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키게 되자 1941년 2월 현직교사의 신분으로 치안유지법 위반이란 죄명으로 체포․구속되어 1944년 9월까지 만 3년 8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참고 자료
김광섭, 『겨울날 : 금광섭 시선집』, 창작과 비평사, 1975.
이상욱, 「김광섭시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청람어문학회 , 청람어문학(6권), 1991.
장선희, 「김광섭의 초기시 연구」, 광주보건전문대학 논문집(19집), 1994.08.1, p.25-48.
김광섭, 홍정선 책임편집, 『(이산)김광섭 시전집』, 문학과 지성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