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김상봉의 <호모 에티쿠스>에 등장하는 철할자 中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최고의 선, 행복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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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이 물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윤리학의 근본이 되는 물음일 것이다. 또한 이 물음에 대한 정의를 그 누구도 쉽게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우리는 참으로 잘살기 위해서, 즉 선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자기인식’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지혜인 것이다.
델포이 신전의 벽면에 새겨져 있다고 하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을 이러한 문맥에서 이해할 수 있다. 플라톤, 박병덕 역. 『소크라테스의 변명』, 육문사, 2007년. p.22
자기인식이 중요한 까닭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서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我), 즉 인간(人間)이란 무엇인가? 고대 철학자들은 육체를 인간의 본체로 보지 않고, 오로지 영혼을 인간으로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체의 안녕이나 쾌락이 아니라 영혼의 탁월함으로 여겼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아직도 “영혼의 탁월함을 위한 선이란 무엇인가”에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가를 말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윤리학의 과제인 것이다. 나는 이글을 통해 최고의 선을 찾기 위해 노력한 많은 철학자들 중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플라톤의 제자이다. 하지만 그들의 철학적 사고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먼저 플라톤은 ‘보이는 세계는 그림자이며, 참된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세계’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영원한 세계, 정신적인 세계의 척도에 비추어 우리가 과연 선한 삶을 사느냐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직 하나의 자연적인 세계밖에 없으며, 이데아든 감각적 사물이든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세계 속에 같이 있다’고 하였다. 즉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또는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일일 뿐이므로 이 세상을 벗어난 곳에서 실현되는 선이나 좋은 것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는 바로 현실주의자요, 자연주의자였다.
참고 자료
1. 김상봉. 『호모 에티쿠스』. 한길사. 1999.2. 로버트 L. 애링턴, 김성호 옮김. 『서양 윤리학사』. 서광사. 2003.
3. J.O 엄슨, 장영란 옮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서광사. 1996.
4. 아리스토텔레스, 최명관 옮김. 『니코마스 윤리학』, 서광사, 1984년
5. 칸트, 최재희 옮김. 『실천이성비판』, 박영사, 1992년.
6. 스튜어트 매크리디 엮음, 김석희 옮김. 『행복의 발견』, humanist,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