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의 생애
- 최초 등록일
- 2010.05.26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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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면서
2. 생애
3. 작가의 문학사상
4. 김종직의 저술
5. 논란과 쟁점
본문내용
1. 들어가면서
김종직(金宗直)은 세종(世宗) 13년(1431)에 태어나 성종(成宗) 23년(1492)에 세상을 떠났다. 곧 15세기 전반에서 같은 세기말까지 62년을 살았다. 그의 생애는 세종대의 정치적 안정과 문화의 개화기에서 시작되어 몇 차례의 정치적 격변을 체험한 후 성종대(成宗代)의 새로운 정치적 안정이 지속되던 기간에 해당한다.
김종직은 조선의 한 시대를 성의껏 살아낸 사람이다. 그는 수많은 시부(詩賦)를 남긴 뛰어난 문인이었고, 정몽주에게서부터 내려오는 조선 사림의 도학 전통을 이어받은 도학자였으며, 김굉필과 정여창 등 많은 제자를 길러낸 교육자였고, 훈구대신들이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계에 진출하여 임금의 각별한 총애를 받던 사림 출신 관료였다. 그리고 재야에 머물던 사림파 도학자들이 중앙정계로 진출하는 데 튼튼한 발판의 역할을 한 사람이다.
김종직은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선택한 역할을 수행하며 한평생을 비교적 무난하게 살고 떠났다. 그러나 시대는 그렇게 떠난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사후에 일어난 일들이 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김종직은 생전에는 논란에 휩싸이는 일이 드물었으나 세상을 뜬 이후에는 엄청난 사건과 논란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그가 세상을 뜬 직후에는 그에게 내려진 시호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며, 연산군 대에는 그의 글 한 편이 빌미가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2. 생애
본관은 선산(善山;일선 一善), 자는 계온(季) ·효관(孝盥), 호는 점필재(佔畢齋),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김종직(金宗直)은 6세부터 그의 부 김숙자(金淑滋)에게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특히 그는 부친으로부터 체계적인 유교교육을 받아 유가의 교양서적은 물론 역사서와 제자백가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공부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공부에 전념한 것은 18세 무렵이다. 그는 29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으며, 성종의 등극과 함께 그는 예문관수찬지제교(藝文館修撰知製敎)에 올랐고 이어 외직을 수행, 이시기에 그의 목민관으로서의 역할 수행과 제자 양성이 이루어졌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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