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의 현존 어진은 제작된 어진에 비해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조선 1대 태조 21대 영조 26대 고종 27대 순종의 어진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전하며 특히 고종은 초상화는 물론 사진도 여러 점 전해진다. 25대 철종의 어진은 불에 타 1/3정도 훼손되었지만 용안과 용신은 구분이 가능한 상태로 전해진다. 그리고 영조의 연잉군 시절 초상은 오른쪽으로 1/3이 불에 타 훼손 되었는데 얼굴 부분은 온전하나 의관이 훼손된 상태이다.
목차
1.어진의 개념 및 분류
2.조선시대 어진의 제작 목적
3.어진의 제작과정
4.조선의 진전제도
5.어진의 양식적 특징
6.현존하는 어진
태조어진
영조어진
연잉군 초상
철종어진
고종어진
순종어진
본문내용
1.어진의 개념및 분류
왕의 화상을 지칭하는 용어로는 실록의 기록에 보이는 것만 해도 진용(眞容), 진(眞), 수용(晬容), 성용(聖容), 영자(影子), 영정(影幀), 어용(御容), 어진(御眞) 등 다양하다. 그런데 숙종 39년(1713) 숙종 어용을 도사했을 때, 어진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는 조정의 논의에 따라 어진이 주로 쓰여졌지만, 어용 또한 조선조 말까지 줄곧 사용되었다.
어진 제작 종류 구분
조선시대의 어진 제작은 대략 3종류로 구분 : 도사, 추사, 모사
도사(圖寫)란 군왕이 생존해 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아 가면서 그려내는 경우이다. 추사(追寫) 또는 추화(追畵)란 왕의 생존시에 그리지 못하고 승하한 뒤에 그 수용을 그려내는 경우로서 그 핍진이 가장 어렵다하며, 조선시대의 몇몇 어진 및 왕세자의 어진은 이 방식으로 그려졌으며, 전설상의 시조들의 수용들도 한결 같이 이 방식에 의존했다. 모사(模寫)란 이미 그려진 어진이 훼손되었거나 혹은 새로운 진전에 봉안하게 될 경우, 기존본을 범본으로 하여 신본을 그려낼 때 일컫는 말이다.
2.조선시대 어진의 제작 목적
어진은 대상에 따라 화면 형식, 자세, 복식, 재료 및 표현, 화가의 수준, 영정의 봉안 방식 등 여러 요소가 조절되었다. 이는 영정이 단순히 어떤 인물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기능을 전제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조선시대 어진의 제작 목적은 크게 제의적 목적과 정치적 목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의적 목적은 일반 영정과 마찬가지로 조상을 추모하여 사후 명복을 비는 뜻으로 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목적은 제의적 목적보다 현실적이라 할 수 있으며 일반 초상화와 달리 제작된 어진을 진전에 봉안하고 일 년에 수차례씩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왕실의 영구함을 꾀하고 왕권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3.어진의 제작과정
어진 제작과정은 도사, 모사, 추사에서 약간씩 차이를 나타낸다. 이과정중에서 초본을 내기 까지가 다른데, 도사의 경우 왕의 용안을 보아가며 그리게 되고, 모사의 경우에는 범본을 밑에 받치고 그리게 된다. 또한 추사의 경우에는 초본내기가 가장 난해하여서 생존시 옆에서 가까이 모셨던 근시인들이나 대신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리게 된다. 그러나 일단 초본과정이 끝나게 되면 거의 같은 단계로 접어든다. 그 구체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참고 자료
단행본
이태호, 조선후기 회화의 사실정신, 학고재, 1996
이태호,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생각의 나무,2008
조선미,한국의 초상화 -형과 영의 예술,돌베개,2009
조선미,초상화 연구 - 초상화와 초상화론 , 문예출판사
안휘준,한국 회화의 이해,시공사,2000
논문
이미경 ,조선시대 어진 연구, 홍익대 교육대학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