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이때까지 한국인으로 살아오면서 정작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나 기본적인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왔었고 이번 기회에 그 시작과 흐름에 대해 알고자 하였다. 내용은 우리나라에 독립이 시작된 배경부터 시작하여 남한단독정부 수립까지의 내용을 포함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존재한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 및 좌우익의 형성과 갈등을 포함하고 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2.1 카이로 선언과 해방
2.2 38도선의 확정과 분단
2.3 새 정부의 수립 노력, 건국준비위원회
2.4 미군정의 성립과 우익진영
2.4.1 미국의 한반도 정책
2.4.2 미군정의 성립
2.4.3 한민당과 우익진영
2.4.4 한국독립당(한독당)
2.5 소련군의 진주와 좌익진영
2.5.1 소련의 한반도 정책
2.5.2 좌익진영
2.6 신탁통치안의 대두와 좌우대립
2.6.1 루즈벨트의 신탁통치안
2.6.2 미소공동위의 결렬
2.6.3 트루먼 행정부와 냉전의 시작
2.7 이승만의 단일정부수립과 좌우합작운동
2.7.1 좌우합작운동과 과도입법의원
2.7.2 이승만의 정읍발언
2.7.3 5.10 선거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2.8 단정반대세력들과 정치적 좌절
2.8.1 남북협상파
2.8.2 김구와 한독당
2.8.3 중간세력
2.8.4 남로당과 좌익세력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2.1 카이로 선언과 해방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미국, 영국, 중국의 정상들은 카이로에 모였다. 카이로 회담에는 루스벨트·처칠·장제스 등이 대표로 참가했으며, 연합국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최초로 일본에 대한 전략을 토의했다. 또한 회담에서 연합국은 승전하더라도 자국의 영토 확장을 도모하지 않을 것이며, 일본이 제1차 세계 대전 후 타국으로부터 약탈한 영토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유독립국가로 승인할 결의를 하여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보장을 받게된다. 이때 최초로 “한국 민중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이 자유롭게 되고 독립하게 될 것을 결의 한다”라는 한국의 독립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며 이후 얄타회담에서 다시 확인되게 된다. 이것은 그동안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나라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민족해방운동에 의한 독립이 아니었기 때문에 민족의 주체적 역량이 확보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점이다. 물론 독립국가의 건설을 위한 국내외 민족해방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존재 하였지만 한민족의 주체적인 힘에 따른 자율적인 독립국가 건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후에 해방 후 정부 수립과정에서 민족의 독립성을 갖기 보다는 일본에서 미군정으로 지배체제 이전의 성격을 갖게 된다.
2.2 38도선의 확정과 분단
38선의 획정, 그 분할 점령 결정이 한반도의 분단 자체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단의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트루만의 회고에 따르면 38선은 일본의 항복을 받는 제일 편리한 할당에 불과 했으며 이러한 임시적 분계선이 영구 분단선이 될 것이라 예상은 못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 측의 주장은 위에서 보듯이 38선을 단순히 ‘군사적 편의선’이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포츠담 밀약설 등 포츠담회담 종료 이전에 이미 미국 참모 본부가 항복, 접수 절차를 토의 결정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여기에 분할선이 어느 정도 고려되고 있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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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광동, 「대한민국 건국과 이승만 정부의 의의」,본질과현상 : 평화를 만드는 책 통권13호 (2008년 가을) pp.89-102
5. 「한반도에 분단을 가져 온 미소공동위원회 : “미국, 소련이 웃으며 만났지만 합의는 없었다”」민족21 2005년 7월호 (통권 제52호), 2005. 7 64쪽~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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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역사학연구소,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사」, 서해문집, 2004, 252쪽~3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