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문체 - 비지류
- 최초 등록일
- 2010.03.19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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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필의 여러 문체중 비지류에 관련된 완벽한 리포트입니다. 참고 문헌을 참고로 저의 감상까지 기록하였습니다.
목차
1. 비지체 산문의 기원
2. 명칭과 연원
3. 형식적 특성
4. 내용적 특성
5. 예술적 특성
6. 작품
7. 나의 감상
본문내용
묘주(墓主)의 생평과 공적을 노래하고 덕을 찬송하는 내용을 나무나 쇠나 돌에 새겨, 무덤 근처에 세우거나 무덤 속에 묻는 문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묘지명(墓誌銘)· 묘비명(墓碑銘)· 묘갈명(墓碣銘)· 신도비명(神道碑銘) 등을 비지류라고 하는데, 논자에 따라서는 비뢰(碑誄) 혹은 뢰비(誄碑)· 애뢰(哀誄) 등의 명칭을 사용하여 애사(哀辭)· 뢰(誄)· 조문(弔文)· 제문(祭文)· 시의(諡議) 등 죽음과 직접 연관된 모든 문장을 망라하기도 한다.
1. 비지체 산문의 기원
비는 궁실의 비와 종묘의 비가 기능이 달랐다. 궁실의 비는 해그림자를 표지하여 시각을 알리는 것이고, 종묘의 비는 제사 때 희생을 묶어두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주목왕(周穆王) 때 공덕을 기록하는 기능으로 발전하였다고 유협은 『문심조룡』에서 적었다.
진시황은 각지를 순행하면서 바위에 공덕을 새겨서, 그 가운데 태산(泰山)·낭야대(琅邪臺)·지부동관(之罘東觀)·갈석(碣石)·회계(會稽)의 각석문(刻石文)이 일부 남았다.「낭야대각석문」은 전반부에서 진시황의 공덕을 칭송한 뒤 후반부에서는 각석의 이유를 새겼으며, 아울러 각석을 의논한 대신들의 명단을 새겼다.
묘지명은 동한 이후 성하여 당대에 널리 지어졌다. 그 형식은 고인의 성씨·본관·일생 등을 산문으로 기록한 지(誌)와 글 전체를 운문으로 개괄한 명(銘)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명과 지 가운데 한쪽이 없는 것도 있다. 지와 명 앞에 서를 두는 것은 `묘지명병서(墓誌銘幷序)`라고 한다. 묘지명은 바닥 네모돌과 덮개돌로 이루어져, 바닥에 지와 명을 새기고 덮개에 표제를 새겨 묘광(墓壙)에 묻는다.
조선의 비지는 한유의 문장을 모범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후기에는 구양수와 전겸익(錢謙益)의 비지를 모범으로 한 것도 많다. 또 이의현(李宜顯)의 「선산부사권공묘갈명(善山府使權公墓碣銘)」은 왕안석의 「탁지랑중묘지명(度支郞中墓誌銘)」모범으로 하였다. 이황(李滉)은 행장과 비지를 공기(公器)·공도(公道)로 인식하여 대단히 중시하였다. 또 자신을 처사(處士)로 규정하고 임종 뒤에 묻을 지석(誌石)의 銘 을 스스로 지어 두었다.
참고 자료
권 호, 『고전수필개론』, 동문선, 1998
심경호,『한문산문의 미학』,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