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혁주의 연풍
- 최초 등록일
- 2010.03.07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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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장혁주의 약력>
<낱말풀이>
<등장인물>
<줄거리>
<‘연풍’의 이해와 감상>
<참고자료>
본문내용
<장혁주의 약력>
1905년 대구에서 태어남. 본명은 장은중(張恩重)으로 부친은 구한국군 장교를 지낸 지주였 고, 그는 서자였다. 생모는 기생출신으로 원래는 당시 부친 상관의 첩이었다고 함.
1913년 보통학교에 입학.
1919년 경주보통학교를 졸업. 그 후 대구의 부친댁에서 살게 됨.
1920년 애정없이 결혼하게 됨. 이후 2남2녀를 두었다.
1921년 관립 대구 고등보통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
4학년때 학생파업에 가담하여 무기정학을 당한 다음에 학교생활에 싫증이 났고 문 학에 심취했음.
1926년 무정부주의자들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과 함께 활동.
교원자격을 얻은 그는 1929년 봄, 대구의 한소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1932년 일어로 된 〈아귀도 餓鬼道〉가 1932년 《개조 改造》(일본잡지)의 현상문예에 2등 입선하여 문단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됨. 이후 한국어소설로는 《동아일보》에 연재 되었던 장편 〈무지개〉·〈삼곡선 三曲線〉을 포함하여 10여편의 장단편을 신문과 잡 지에 발표함.
1936년 여름 동경에 이주. 동아일보에 연재 중이던 소설도 중단.
새 부인인 야구규자 여사를 만나, 1947년까지 5아들이 태어났다.
장혁주는 점점 안정을 되찾아 왕성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40년 장현 ‘여인소설’을 마지막으로 한국문학을 마무리 짓고 일본어로 된 창작활 동을 본격적으로 함.
1952년 일본에 귀화하여 노구치 카쿠츄우(野口赫宙)라는 이름으로 일본인이 됨.
<낱말풀이>
목세루 : 목서지의 잘못된 말. 면직물의 한가지로 무명실을 평직이나 능직으로 짠 것.
서녀 : 첩의 몸에서 난 딸.
뚜쟁이 : ‘밀매음을 주선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바른편 : 오른편
등롱 : 불을 켠 초나 호롱을 담아 한데 내어다 걸거나,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하여 어 둠을 밝히던 기구.
참고 자료
-백천풍, 장혁주연구, 동국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90
-노상래, 장혁주의 조선어장편소설 연구, 2001
-인터넷검색사이트 empas 한국학 지식 中 장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