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이기영의 고향과 이광수의 흙 비교
목차
Ⅰ. 이기영「고향」
1. 「고향」의 시대적 의미
2. 형상성과 예술성의 차이
3. 제도의 물신화와 마름의 관계
4. 물신화의 표정 읽기
5, 본질적인 것과 소설 미달 현상
6. 예술성과 형상성의 차이
Ⅱ. 이광수「흙」
1. 「흙」- 동우회사상의 실천
2. 「흙」의 문제점
3. 「흙」과 농민문학의 성격
Ⅲ. 결론
Ⅳ.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이기영「고향」
1. 「고향」의 시대적 의미
이기영의 장편「고향」(1934)은 일제 강점기에 씌어진 카프계열 작품의 최고 수준을 보였을 뿐 아니라 3부 작 「두만강」(1954-1961)이 나올 때까지 이 작가에 있어서도 최고 수준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 루카치적인 의미에서의 총체성 개념에 이 작품이 거의 유일하게 도달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총체성이란 당시 한국 농촌 현실의 중요성과 밀접히 관련된다. 전 인구의 8할이 농민이거나 농민과 관련된 생산 관계 가운데 놓여 있었던 1930년대 초반의 한국 현실은 그 자체가 바로 농촌 현실이기도 한 것이라 볼 수 있거니와 농민 작가로 나선 이기영의 「고향」에까지 이른 길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농부 정도령」(1926)에서 출발하여 「종이 뜨는 사람들」(1930), 「홍수」(1930) 등의 중요한 단편을 거쳐 「서화」(1933),「돌쇠」(1934) 등 중편에서 주제의 심화와 확대를 꾀했으며 이러한 바탕 위에서 비로소 「고향」이 형성될 수 있었다고 볼 것이다. 말하자면 「오빠의 비밀편지」(1924)에서 출발하여 조금씩 이기영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대하고 주제를 심화시켜 「고향」에 이르기까지에는 무엇보다도 다음 두 가지가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작가가 카프맹원이었다는 점. 정규의 근대적 교육을 받은바 없는 이기영이 자기 나름의 투철한 세계관과 그것에 알맞는 소설적 기술을 습득하기까지에는 카프조직에의 가입과 그 조직이 가르치는 큰 힘의 도움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1932년의 한 기록에 따르면, 이기영은 카프작가동맹 책임자(1930. 3. 27)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1931년 공산주의협의회 사건 때에는 구속자 17명중의 한 사람이었다.(당시 나이 36세, 주소는 충남 천안군 천안면 유근리 39) 한위건, 양명 등 ML당 사건으로 중국에 망명한 이들이 공산당 재건을 위해 동경과 서울에 거점을 마련하고자 한 사건을 두고 공산주의협의회 사건이라 부르는데, 카프조직체가 이에 관련되어 있었던 관계로, 임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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