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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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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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 S617so. 도서관에 배치된 신의 침묵의 청구 기호이다. 프랑스 추리 문학 대상에 빛나는 이 책을 몇 명이나 읽었는지 책은 새 책이나 다름없었다. 이 책을 꺼냈을 때, ‘연쇄살해범이 천사들을 죽이고 있다!’라는 자극적인 표지 문구에 내가 설렜던 만큼 등에 뿌연 먼지를 쓰고 있던 이 책도 나만큼 설렜으리라 믿는다.

연쇄 살해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크지는 않았다. 살해범이 어둠 속 에서 피해자를 살해하는 장면, 살해자가 다음 살해를 예고하며 피해자들의 목을 천천히 조르는 장면, 유혈이 낭자하는 범죄 현장, 그리고 교묘한 방법으로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살해자의 용의주도함, 예상치 못한 반전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대신 흡입력은 대단했다. 연애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알 것 같아요. 선생님은 말하자면 세상으로부터 도망치셨네요?”

“그렇지 않아. 과감히 도전한 거지. 세상이 내 인생을 삼키게 내버려두지 않은 거야. 같은 게 아니지.”


“나도 알아. 하지만 슬픔을 되씹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슬퍼하면 슬퍼할수록 더욱 슬퍼지는 법이야. 또 슬픔은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깊어지는 법이고”


“행복이란 하얀 종이 위에 하얀 잉크로 쓰는 거예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구절들이다. 첫 번째 구절은 나의 생활을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도 중복 수정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더라도 그레이 부인처럼 모든 것을 떨치고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 말이다. 도전에도 용기가 필요하듯이 포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와 결단력을 갖춰 내 인생이 중복수정에 묻히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하겠다.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마지막 구절이다. 재니트가 그녀의 딸, 줄리의 20살 생일을 축하하며 사준 차를 줄리가 타고 나갔다가 사고가 발생했고 동시에 즉사한 내용을 말하면서 재니트가 자신의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행복이란 말 그대로 하얀 종이 위에 하얀 잉크로 쓴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행복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면, 행복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없다고 느끼는 것뿐이다. 오히려 하얀 종이 위에 하얀 잉크로 쓴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잉크로 쓰지 않은 부분마저 있다는 것이다. 온통 하얀 잉크로 칠해져있는데 하얀 종이 위이기 때문에 없다고 보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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