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재일교포 3세의 정체성과 민족의식 형성
조총련계 민족학교가 이들에게 끼친 영향등에 대해서
재일교포와의 개별 구술면담을 통해
분석한 소논문입니다.
목차
I. 서론
Ⅱ. 본론
1. 자이니치 3세의 정체성 형성과정
2. 조총련계 조선학교의 존재와 영향
3. 한국으로의 귀환
Ⅲ. 결론
본문내용
I. 서론
자이니치 (재일교포)라는 존재는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에서 유래한다. 일제의 침략과 독립, 그 후에 이어진 한반도내의 전쟁과 분단은 이들을 일본과 한국 사회에서 매우 특수한 위치에 놓이게 하였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조총련계 재일교포들은 오랫동안 북한 국적의 사람들이라 오해 받아왔으며, 조총련계 관련 기관은 국가보안법상 모두 이적단체로 구분되어 이곳을 방문하거나 조총련계 교포를 만나는 것은 이적행위로 간주되었다.
일제 치하 아래 제주도, 호남과 영남 지방의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강제 징용을 당했다. 강제적으로 일본 국적을 부여받고 먼 땅에서 힘든 삶을 살아오던 조선인들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자 ‘조선’이라는 국적을 부여받았다. 이는 실제적인 차원의 국적이라기보다는 출신지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의 패망 이후 떠나온 조국에서는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의 결과로 한반도 내에는 대립하는 두 개의 정권, 두 개의 나라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재일교포들은 고향 땅에 설립된 이념적, 정치적으로 다른 두 정권, 두 나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재일교포들은 한국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고, 일본인으로 귀화하여 일본 국적을 갖는 것도 가능해졌다. ‘조선’ 국적을 유지하거나 조총련계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를 졸업한 재일교포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본사회에서 취직, 진학, 영업 등에서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다. 일본정부에서는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귀화를 종용하고 있으나 아직도 귀화하지 않고 ‘조선’ 국적을 지키고 있는 교포들이 있으며, 조선학교에 다니는 이들의 후손들이 존재한다.
재일교포들은 해방 후 자녀들에게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르치는 모국어교육 등의 민족교육을 실시하기 위하여 자주적으로 많은 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1948년 일본 문부성은 조선학교를 폐쇄 조치하고 학교폐쇄에 반대하는 재일교포들을 억압하였다. 일본의 재일교포 민족교육에 대한 정책은 학교 폐쇄등과 같은 민족교육에 대한 탄압과 동시에 일본학교로의 동화교육 강요이다. 일본정부의 끊임없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재일교포들은 6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민족학교를 지켜왔다. 현재 일본에는 북한을 지지하는 조총련계 조선학교와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민단계 한국학교가 있는데, 조선학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조총련계 조선학교는 아직도 일본정부에서 공식적인 학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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