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의 귀국과정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9.11.29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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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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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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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Ⅱ. 본론
1. 해방직후 임정의 상황과 정치세력
1) 민혁당
2) 한독당
3) 신한민주당
2. 임시정부의 귀국 과정
1) 당과 당 사이의 내부 갈등
2) 임정의 귀국
Ⅲ. 결론
본문내용
Ⅱ. 본론
1. 해방직후 임정의 상황과 정치세력
해방 전 1943년 카이로 회담 이후, 임정이 부단히 이루려고 노력했던 것은, 독립조선을 대표할 정부로서 승인을 받는 것이었다. 임시정부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자주독립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일본이 갑작스럽게 태평양 전쟁에서 항복을 하게 되고,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일제 강점기의‘임시’적인 정부로서 독립기관이었으므로, 해방 이후 귀국과 더불어 자주적인 독립국가로 남기 일어서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에 따라, 임정의 정통성에 대한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임시정부는 하나의 독립된 정부로서 국제사회에서 승인받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이하에서는 당시 임정의 대표적인 정치 세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한국독립당(한독당)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옮기기 직전까지 임시정부는 김구가 중심인 한국국민당, 조소앙이 중심인 재건한국독립당, 그리고 지청천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혁명당으로 세 우파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
2) 임정의 귀국
임정은 해방 직후 빠른 귀국을 희망하였으나, 사실상 미국에서는 임정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임정부인 정책을 내세웠다. 따라서 중경 임시정부 요인들은 정부자격으로서의 귀국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11월 23일 김구 주석, 김규식 부주석 등 제 1진 15명이 개인자격으로 중국 장개석 총통이 마련한 특별기편으로 귀구했으며 임정요인 제 2진 23명은 12월 1일 귀국하게 되었다. 이현희,『한국현대사건사』, 한국조선기자포럼, 1999년, pp14-15
비록 미군정에 의해 개인자격으로 귀환하였으나 당시 국내에서의 국민의 기대와 환영의 도는 열광적이었고 정통성의 인정문제가 저변으로까지 확산 보급되었음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이현희,『大韓民國臨時政府』,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1994년 pp222-p223
Ⅵ. 결론
지금까지 해방 직후 임정의 상황과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좌우 세력들에 대한 소개 및 귀국 전까지의 과정으로서 극심했던 내부 갈등과 ...
참고 자료
李炫熙,『한국현대 사건사』, 한국조선기자포럼, 1999년
李炫熙,『大韓民國臨時政府』,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1994년
<참고자료>
이용기,「1945-1948년 임정세력의 법통정부 수립운동」, 서울대 석사, 1996년
배경식,「‘반한독당세력’의 중경임시정부개조운동과 해방 후 과도정권수립구상」, 성균관대 석사,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