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인층
- 최초 등록일
- 2009.11.16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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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중인층에 관한 것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중인의 개념과 범위
3. 중인의 성립시기
4. 기술직으로서의 중인
5. 경아전으로서의 중인
6. 향촌사회에서의 중인
7. 맺음말
본문내용
2. 중인의 개념과 범위
중인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7세기 후 부터이다. 조선 전기는 중인은 법률로 규정된 사회 계층이 아닌 사회 관습상 형성된 용어이기 때문에 그 범주가 명확하게 합의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중인은 中人, 中庶, 庶孼, 中路, 中徒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나타나고, 朝鮮王朝實錄의 중인에 관한 것이 나오는데 조선 전기(태조~성종)까지 중인의 용어가 나오지 않고 중기(연산군~현종)에서는 서얼과 함께 중인이라는 용어만 20여건 나오고 후기(숙종~철종)에 가서야 서얼, 중서와 함께 중인용어만 80여건이 넘게 나온다. 이는 조선 후기에로 갈수록 용어가 자주 등장하면서, 조선시대 중간층인 서얼층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으면서 중기이후 형성되어 사며 후기로는 中人이나, 中庶라는 하나의 신분층으로 확립되어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인층에 서얼을 포함시키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그들이 기술직 관료로 들어왔을 때만 포함시키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제외하는 것이 옳다. 서얼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신분적 처지를 동질적으로 파악하고 하나의 집단으로 결속하여 소극적인 운동을 전개하는데, 이는 그들 스스로 서얼을 다른 범주로 보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조 때 서얼의 과거응시를 허용하면서 業儒·業武라는 특수 칭호를 붙여 사족들의 유학이라는 칭호와 구별하게 사는 동시 사역 이하의 기술관은 중인에 속하여 사족 중인 서얼의 칭호를 엄격하게 구분했음을 알 수 있다.
중인의 범주에 드는 技術官員으로서 역관(譯官)·의관(醫官)·산관(算官)·율관(律官)·음양관(陰陽官)·사자관(寫字官)둥 잡과 시험을 통해 뽑힌 관원 이거나 雜學取才 雜學取才: 조선시대 특정 부서의 관리·서리·군사·기술관 등의 채용을 위해 보던 자격시험이다. 시취(試取)라고도 함. 조선시대의 취재는 선발시험뿐만 아니라, 특정 관직의 후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경우와 성적우수자에게 관직을 주는 일종의 승급시험이나 기술연마를 장려하기 위한 분발규정으로도 기능을 가짐.
를 거처서 뽑힌 기술관원들이면 모두가 중인에 속하는 자들이다. 흔히 중인이라 하면 서울의 醫譯中人을 많이 떠올리나 안병태씨는 그밖에 중인층의 실체를 파악을 하였는데 그는 鄕吏, 營主人 營主人: 조선시대 감영에서 각 군·현의 연락사무를 맡아보던 지방의 향리. 행정 실무, 출신 고을과의 연락업무 등을 맡는 외에 수령에 대한 정보를 관찰사에게 제공함. 조선 후기에 들어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경제적 실력자로 부상하였고 지방 여론조성을 하여 중앙정치에 영향력을 미침.
, 旅閣主人, 客商主人 客商主人: 京鄕 각지의 상품 집산지에서 상품을 위탁받아 팔아주거나 매매를 주선하며, 그에 부수되는 창고업 ·화물수송업 ·금융업 등 여러 기능을 겸하는 중간상인.
, 道掌, 舍音 舍音: 지주로부터 소작지(小作地)의 관리와 감독을 위임받은 사람으로 조선후기엔 최하급 광토관리자.
또한 중간계층으로 파악하였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 특권을 체제로부터 승인 묵인되어 있었고, 물질적 보증을 직접 국가로부터 부여 받고, 국가에 부과된 역으로 처음에 행해졌던 것이 점차 특권으로 전화한 것 또 국가에 대한 종속성과 정도의 차는 있지만 독립성이 병존해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안병태, 전개서.
즉 위의 신분들은 국가적 수탈 착취에 의해 출현하고 그 존재를 체제로부터 승인 받은 중간 계층이라 파악하였다. 즉 안병태씨는 중인층은 관직 외에 다른 신분으로서도 나타냈다는 것이고, 국가로부터 특혜를 받는 것 독자적인 층이라 할 수 있다.
위의 것만으로 해도, 중인층 범주는 시험을 통해 뽑힌 관원 이외 향촌, 상인, 토지 관리인 등 중인층에 대한 범주는 다양하며 혹은 그 범주 자체가 복잡하게 나오지만 이번 본문에서는 여러 가지 요소에 나타내는 중인층의 성격을 배제시키고 기술직, 경아전, 그리고 지방의 향촌사회에서 중인층이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3. 중인의 성립시기
중인이라는 칭호가
참고 자료
「고문서를 통해 본 조선시대 사회사」김현영. 2003 신서원
논문참고
「조선 후기 譯官의 중개무역과 倭館維持費」김양수
「조선조 중인 계층 시고」 鄭武龍
「조선 후기 서울지역 중인세력의 성장과 한계」 조성윤
「조선 후기 中人 신분의 성장과 그 한계」 김필동
「조선 후기 中人에 대하여」 -哲宗朝 中人通淸運動 자료를 중심으로- 韓永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