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역사 이해 ] - 이븐할둔의 문명 사관
- 최초 등록일
- 2009.10.22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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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븐할둔의 문명 사관
목차
1. 이븐할둔(Ibn Khaldun, 1332~1406)의 생애
2. 이븐할둔의 문명사관
(1) 인간의 사회조직은 필요불가결하다
(2) 지리학적 요소(환경)와 문명의 연관성
(3) 연대의식
(4) 국가론
본문내용
1. 이븐할둔(Ibn Khaldun, 1332~1406)의 생애
최초로 비종교적인 역사철학을 발전시킨 아라비아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인 그는 1332년 5월 튀니스에서 출생하였다. 이븐할둔 가(家)는 아랍인의 정복시대 초기에 스페인으로 건너와 카르모나에 정착했다. 그 후 이 가문은 세비야로 옮겨갔고, 9세기에 일어난 내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할둔가는 세비야의 지도적인 세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8세기말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의 내란 시 주된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 후 4세기 동안 스페인의 우마이야, 알무라비툰, 알 무와히 왕조의 행정부 및 군부에서 주요 위치를 차지했다. 이븐할둔 가(家)는 튀니스에서 주요한 행정직위를 차지했다. 이븐할둔의 아버지도 행정관이자 군인이었으나 얼마 안 있어 그만두고 신학·법률·문학에 전념했다. 매우 불안정했던 당시 아랍의 정세에서 이처럼 정치학을 피하던 이븐할둔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에게 코란, 하디스, 아랍어와 아랍문학 그리고 회교의 연구기초가 되는 최고의 교육을 준비해주었다. 따라서 아버지 덕에 이븐할둔은 어린 나이부터 유명한 학자들과 폭넓은 교류를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문명의 과정에 영향을 준 초점들과 요소들에 대해 깊은 시각을 제공하는 능력 때문에 가장 뛰어난 탁월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마린 왕조의 튀니스 통치에 종말을 가져온 혼란과 유혈사태는 흑사병과 함께 일어났다. 이것은 17세의 이븐할둔에게 깊은 자국을 남겼는데, 이 재앙의 많은 피해자 중에 그의 부모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븐할둔은 18세의 나이에 관직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1354년에 그는 군주의 비서가 되어 모로코의 페즈로 옮겼다. 이후 마린 왕조, 그라나다 왕국, 부지에의 영국을 비롯한 여러 소국을 돌아다니며 정치생활을 지속한다. 그가 이룩한 이런 빠르고 손쉬운 이동들은 그 후 15년간의 그의 삶의 방식을 말해준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정치적 부상과 그를 정치학에 빠지게 둔 그의 야망耀솽에서, 그의 삶은 1406년 그의 죽음과 함께 끝맺은 높은 지위와 명성들, 면직과 불명예의 놀라운 결과를 지속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