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의 보한집
- 최초 등록일
- 2009.06.26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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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인로의 파한집을 이은 최자의 보한집입니다.
파한집, 보한집, 백운소설이 대표적 시화집이지요.
후에 역옹패설에 영향을 준 듯 합니다 ^^
목차
1. 작가 최자의 생애 : 1188(명종18)-1260(원종1)
2.『보한집』의 저작동기와 의의
3.『보한집』의 내용 분석
4.『보한집』본문
5. 신의론(新義論)과 용사론(用事論)
6. 주기론(主氣論)
7. 수필문학적 성격과 한계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작가 최자의 생애 : 1188(명종18)-1260(원종1)
최자는 고려 무신집권기 중 최씨 집권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관인이요 문인이다. 자는 수덕(樹德), 호는 동산수(東山叟)이며, 시호는 문청(文淸), 본관은 해주(海州) 최씨로 최충(崔沖)의 7대손이다. 1212년(강종 1) 과거에 급제하고 상주사록(尙州司祿)을 거쳐 국자감학유(國子監學諭)가 되었다. 이후 10년간 중용되지 못하다가 일찍이 지어놓은 시 <우미인초가(虞美人草歌)>와 <수정배(水精盃)>가 이규보의 눈에 띄어 최이(崔怡)에게 문한(文翰)을 담당할 사람으로 추천되었다. 추천받은 사람들간의 시험에서 5번 장원을 하고, 5번 차석을 했으며, 이어 실무능력 시험을 위해 급전도감녹사(給田都監綠事)로 임명되자, 민첩하고 근면하게 업무를 처리하여 실력을 인정받았다. 고종 때 사간원 정언을 거쳐 상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뒤 전중소감(殿中少監)‧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 충청도‧전라도 안찰사, 국자감대사성‧지어사대사‧상서우복야‧한림학사‧추밀부사 등을 역임했다. 1256년 중서평장사가 되었고, 다시 수태사‧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판이부사가 더해졌다. 1258년 김준(金俊)이 최의를 죽여 최씨무인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하자, 수상으로 난국을 잘 수습했다. 1259년 추밀사 김보정(金寶鼎)과 함께 몽골에게 항복하여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시문에 뛰어나 문명을 떨쳤으며 문신이면서도 무인정권기에 대표적 문벌로서 활동했다. 저서로 <최문충공가집(崔文忠公家集)>‧<보한집(補閑集)>이 있다.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 시 1편이, <동문선(東文選)>에 부(賦) 2편, 시 10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2.『보한집』의 저작동기와 의의
(1) 저작동기
우리 문학의 비평사에 있어서 본격적인 비평활동은 고려 중엽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도 비평문학활동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당시의 비평문학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가 전무하고, 문학사의 흐름에서 살펴봐도 본격적인 비평문학 장르가 나오기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별로 문제삼을 것이 없다고 하겠다.
참고 자료
김당택, 『고려의 무인정권(한국사연구총서 17)』, 국학자료원, 1999.
김진영,「파한집‧보한집의 시학적 연구」, 국어국문학 113호, 1995.
최자, 박성규 역,『보한집』, 계명대학교 출판사, 1984.
하정승,「최자의 문학론-『보한집』을 중심으로-」, 동방한문학 제29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