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위진시대 귀족들을 통해 본 중국의 고대의 모습
목차
Ⅰ. 서론
Ⅱ. 위진 귀족사회성립의 배경과 과정
1) 정치․사회적 배경
2) 구품중정제의 폐단
3) 사상적 요인
Ⅲ. 세설신어를 통해 본 위진시대 귀족사회의 특징
1) 유가의 예교 그늘 속 귀족들의 모습
2) 그늘 밖으로 나온 귀족들의 유교적 속박에 대한 거부
3) 탈유교적 귀족들에 대한 이해
Ⅳ.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서론
후한말․위진시대는 두 차례에 걸친 당고 사건과 팔왕의 난, 영가의 난 등으로 인해 혼란과 분열이 계속된 시기였다. 더욱이 환관의 전횡, 과중한 세금과 요역, 관료의 부정부패, 자연재해 등은 왕조의 몰락과 사회변화의 원인이 되었다. 변화 속에서 사회를 주도하며 정치․사회적인 영향력을 갖고 지적활동에 주도적이었던 계층들을 사대부라고 한다. 귀족 혹은 호족이라 불리는 사대부는 한대부터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다. 귀족사회는 3세기 이후부터 당나라 때까지 중국사회의 특색을 이루고 있다. 귀족사회라고 하는 것은 귀족 또는 호족이라 불리는 사회층이 넓게 존재하고 그들이 정치·사회·경제·문화의 모든 면을 담당하는 중심적인 존재가 되는 체제이다.
후한이 무너지고 위진남북조 혹은 육조시대라 불리는 분열의 시대가 도래 한다. 이러한 분열과 혼란의 시대는 후한말인 180년대부터 시작되고 있었고, 589년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 400여 년간 이어졌다. 이 400여 년간의 시기에 전제군주제는 확립될 수 없었지만, 귀족들은 명맥을 이어 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를 ‘귀족제 사회’라 규정할 수 있다. 사회계층은 몇 갈래로 분화되고 가문은 각각의 계층으로 고정화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그 최상층에 자리한 명문이 되기 위해서는 대대로 풍부한 교양을 갖춘 지식인을 배출해야 했다. 무인은 전공을 아무리 많이 세워도 이들 귀족들 틈에 낄 수 없었다. 귀족계급은 무사가 아니라 교양 있는 문인이었다. 무력집단을 장악한 무인이 새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특히 화북을 지배한 여러 이민족들은 무력을 바탕으로 국가를 건설하였고, 그곳에서 무인가문도 귀족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를 통치하고, 그 국가를 유지해 나가지 위해서는 반드시 문인귀족층의 협력을 받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이민족의 황실과 무인귀족들도 점차 문인귀족층의 영향을 받아 문인화가 되어갔다. 문인귀족층은 국가의 흥망을 초월하여 영속하였다. 그들은 긴 난세동안 중국문화를 강인하게 지켜내고, 더욱 발전시킨 중심축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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