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계획
- 최초 등록일
- 2009.06.16
- 최종 저작일
- 2009.06
- 1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목차
1가족계획
2가족사회계획의 변천
3.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사업
4가족계획방법
5. 지역사회간호사의 역할
본문내용
가족 계획
1. 가족계획의 개념
가족계획이란 가족의 시작기인 부부가 그들의 자녀에 대한 출산계획, 즉 출산시기, 간격, 자녀수를 결정하여 건강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계획하고 결정하여 모성의 건강과 가족의 건강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2. 가족계획 사업의 변천
∙ Thomas Robert Malthus(1777-1834): ‘인구론’이라는 저서에서 인구의 증가가 인간 생활을 위협을 주어 미래가 낙관적일 수 없다라고 제시함으로써 가족계획의 개념이 기초이론으로 독립되어 논의됨
∙ Margaret Sanger(1883-1966): 산아제한 운동을 실천운동으로 전개하여 출산제한을 위한 피임의 필요성을 역설
∙ Marie Stopes: 여성의 임신의 조절과 성교육의 필요성을 주장
∙ Ottosen Jensen: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1948년 23개국의 대표가 모여 국제가족계획위원회를 런던시에 설립되었으며 이 위원회는 1952년 인도의 봄베이에서 열린 회의에서 국제가족계획연맹으로 정식발전
우리나라의 대한 가족계획협회는 1961년에 정회원으로 가입
3.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사업
∙ 실질적인 가족계획운동이 시작된 것은 1961년 4월에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창립되면서 시작됨
1) 제 1차 가족계획사업(1961-1965)
사업의 목적: 가족계획이라는 새로운 말을 국민에게 주지시킴이 사업의 목적이였음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자” “ 많이 나아 고생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등의 표어가 주로 사용됨
2) 제 2차 가족계획사업(1966-1970)
1966년에는 출산율이 5.0정도이고 가족계획의 실쳔율은 25%에 불과해 자녀수의 제한을 주장하게 되었는데 내용면에서도 인구문제의 인식을 높이고 자녀수의 제한, 모자보건과 자녀교육, 노후문제를 위해 단산을 해야한다는 내용을 주장함
“ 적게 낳아 잘 기르면 부모 좋고 자식 좋다.”
3) 제 3차 가족계획사업(1971-1976)
가족계획사업의 근본문제가 남아선호사상임을 깨닫고 이 점에 중점을 두었으며 시술이나 피임을 실천하는 것과 연결시킬 수 있도록 피임 서비스 기관을 집중적으로 안내하고, 1976년엔 난관 수술이 보급되었고 1977년에는 불임수술에 역점을 두기 시작
“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4) 제 4차 가족계획사업(1977-1981)
이때의 출산율은 2.6%였으며, 가족계획 실천율이 49%가 되어 법적, 제도적 종합대책이 강구되었음
“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5) 제 5차 가족계획사업(1982-1986)
더욱 출산율 저하를 강조하여“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 둘도 많다.”등의 표어사용
6) 제 6차 가족계획사업(1987-1991)
인구 저출산 저사망 형태로 변화하면서 모자보건의 바탕 위에 인구의 자질향상을 고려하여 가족계획사업의 방향이 바꾸어 가게됨
“적게 낳아 엄마건강 잘 키워 아기건강” “ 사랑으로 가족계획 이웃간에 오누이”
7) 제 7차 가족계획사업(1992-1996)
가족계획사업의 전환기로 정부가 피임 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통한 적기의 피임 수용과 정확한 피임방법의 사용을 위한 정보제공, 홍보, 교육을 전개하여 국민의 정확한 피임 사용법의 실천을 적극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개
기혼집단, 청소년, 예비신부, 신혼 부부 등의 특수계층에 대한 홍보, 교육, 지도, 상담, 등을 통한 자비 피임 실천의식 제고 및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특수 프로그램 개발에 역점을 두었으며, 시, 도 단위의 지역별 가족계획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지역별 가족계획 사업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전력을 다함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