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국인 프로야구 선수인 장훈선수의 삶에 대한 보고
- 최초 등록일
- 2009.06.06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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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재일교포는 현재 일본 법무성 통계에 의하면 71만명 정도로 집계 되고 있다. 더욱이 일본인과 똑같은 의무를 지면서도, 재일동포라는 이유만으로 진학, 취업 등 전반에 걸쳐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일본은 재일 외국인들에 대한 귀화를 정책적으로 펴 나가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재일동포들의 차별을 방조 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미 수많은 재일동포들이 일본으로 귀화를 선택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들의 선택이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장훈’[일본이름 하리모토 이사오(張本 勳)]선수는 숱한 차별과 멸시, 그리고 일본인으로 귀화하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공식석상에서 조차 자랑스럽게 ‘나는 한국인 이다’라며 재일동포들의 가슴속의 응어리를 속 시원히 풀어준 영웅이며 그 스스로 이러한 차별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았다. 조사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장훈선수는 이러한 민족적 자긍심으로서 뿐만 아니라 스포츠맨으로서의 능력 또한 매우 뛰어났다. 통산 3천 안타라는 대 기록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갱신 가능한 가능성을 지닌 선수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전무후무한 대기록이다. 특히 평범한 스타급 야구 선수들과는 달리, 장훈선수는 데뷔 이후 꾸준하게 항상 타격에 있어서 일본프로야구 전체 선수들과 비교하여 상위권을 유지 할 만큼 철저한 자기관리를 보여줬다. 뿐만아니라 외국인 선수에게는 매우 인색한 일본프로야구 리그의 최우수 선수(62년 MVP)에도 등극하여 재일동포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목차
1. 서론
2. 본문
- 장훈선수의 생애
-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활동
- 재일한국인으로서의 장훈
3. 결론
4. 참고 자료
본문내용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결승타점을 올리고 경기 수훈선수로 뽑힌 후 장내 아나운서와의 인텨뷰에서 소감을 묻는 장내 아나운서의 질문에 장훈 선수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치는 홈런과 안타 하나 하나는 일본인에게 차별받고 멸시당하는 재일 조선인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고 있으며 자랑스러운 우리 조선동포들을 차별하는 비열한 일본인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시원한 복수다 " 경기장은 뒤집혔고. 일본관중들은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웅 장훈 선수는 너무나 당당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그라운드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지금도 해외에 진출해 있는 국내 스포츠 스타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가 장훈선수처럼 자신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뜨거운 조국애를 보여주었으며, 그 어느 누구가 장훈 선수처럼 그들 앞에 당당할 수 있었는가? 아직도 일본 야구사에 전설적인 투수로 거론되고 있는 요미우리의 가데다 ( 한국명: 金正一)가 부와 명예를 위해 일본으로 귀화해서 순탄한 선수생활과 함께 은퇴 후에도 일본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반면, 장훈 선수는 일본 야구계의 집요한 귀화 유혹을 끝까지 뿌리치고 많은 불이익을 감수 하면서도 한국국적을 버리지 않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3. 나오며
장훈 이라는 인물을 조사하면서 많은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재일교포에 대한 일본내부의 차별이 이렇게까지 심각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기록만 놓고 보았을 때 장훈은 나가시마, 왕정치와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 성적을 낸 대단한 선수이다. 하지만 그는 적극적인 한국인이었고 또 한명은 순수한 일본인, 다른 한명은 소극적인 중국인 이었다는 점이 그의 스포츠적인 업적마저도 폄하하게끔 만든 것이다. 그보다 선배인 일본 야구사의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는 가네다 마사이치(한국명: 김 정일)와 레슬링 선수인 역도산이 귀화를 했지만, 끝까지 귀화를 하지 않고 일본 땅에서 자긍심을 빛내 준 자랑스러운 한국인인 것이다.
참고 자료
- 방망이는 알고있다 - 장훈 瑞文堂
- 네이버 블로그 (각주 참조)
- 인조이재팬(http://enjoyjapan.naver.com)
- 일본야구기구(http://www.npb.or.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