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발해의 당, 신라, 일본과의 대외관계와 그들과의 대외관계 속 고찰점들에 대해 적었습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가깝지만 먼 신라, 남북국시대에 대한 고찰.
2. 당, 발해가 당의 지방정권이었나.
3. 일본, 일본도 속에 감춰진 그들의 속내.
Ⅲ. 결 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668년 고구려가 당과 신라에 의해 멸망하고 약 30여년이 지난 뒤, 대조영에 의해 발해가 건국되었다. 발해는 점차 주변지역을 복속하며 빠르게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주변국가와의 교통로를 개척하여 당시 국제관계의 한 축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동방 일각에서 웅대한 기상과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강대한 국가인 발해는 926년 거란의 침입으로 220여년의 삶을 마친다. 비록 길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짧다고 볼 수 도 없는 220여년 발해의 발자취를 살펴보다보니 문득 그들의 대외관계에 대해 궁금해졌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백전백승이라고 하지만 적을 통해 나를 알아보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써내려갈 것은 발해의 대외관계사와 그를 통한 새로운 고찰에 관한 것이다.
Ⅱ. 본 론
발해는 주변 왕조였던 당, 일본, 신라, 돌궐 등과 교섭하였다. 그 중에서도 당, 일본, 신라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세 나라의 경우는 단순히 발해와의 대외관계에 관한 서술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대외관계를 통한 또 다른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다.
1. 가깝지만 먼 신라, 남북국시대에 대한 고찰.
『삼국사기』나 『신․구당서』등에 나타나는‘신라가 721년(성덕왕 20) 발해의 급속한 영토 팽창에 대비하여 북쪽 경계에 장성을 쌓았고, 732∼733년 무왕의 당나라의 등주 공격 때 신라가 당나라 편에 가담했다’는 것과 같은 근거로 발해와 신라의 관계를 종래에는 대립의 시각에서만 보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볼 때, 100% 적대관계로만 이루어진 상황은 없었다. 언제나 평화적인 우호관계도 함께였다. 심지어 동족의 국가인 두 나라가 군사적 대립만 유지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통치자의 정치적 야욕에 의해 빚어진 불편한 관계가 존재했다고 해도, 일반 대중의 경우는 상호간 교류가 지속되었다. 757년(경덕왕 16) 간헐적으로 이용된 신라도로를 상설적인 교통로로 삼았다든가, 790년(원성왕 6)과 812년(헌덕왕 4) 2회에 걸쳐 신라가 발해에 사신을 파견하였고,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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