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허균의 생애와 문학세계에 대한 학위 논문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작가연구
1. 사회적 배경
2. 허균의 생애
3. 허균의 정치관
1)호민론의 혁명이론
2)내정개혁
3)국방책
4)신분 차별 타파
5)붕당 정치
Ⅲ. 허균의 교유인물와 사상
1. 교유인물
1)허균과 권필
2)허균과 매창
2. 사상
1)유교
2)불교
3)도교
4)서학
Ⅳ. 허균의 문학세계
1. 『전』과 소설 문학
1)『전』문학
2) 소설 문학
2. 시 문학
Ⅴ.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어느 시대든지 시대를 앞서나가는 사람이 있고 시대가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 시대를 앞서 나가는 사람이 글, 행동으로 자기의 주장을 펼쳐 성공하면 건국(建國) 또는 혁명(革命)이라는 이름으로 찬양되지만 만약 실패하면 역적이라는 이름으로 처형되었다.
조선 왕조 오백 년 역사만 보더라도 수차례 거사가 있었고 그 가운데 두 차례의 반정이 성공하였다. 성공한 두 차례의 반정을 제외하고 실패한 거사에 연관된 인물들은 모두 역적이 되어 역사에 기록되었던 것 이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편에서 쓰였기에 이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많이 나와 있지 않다.
오백 년 동안 여러 사람들이 역적(逆賊)이라는 죄명으로 처형되었으나 그들은 대부분 당대의 임금이 바뀐 뒤에 복권(復權)되었다. 그들이 바꾸고자 했던 것은 당대의 집권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균(許筠)만은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복권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언제나 성이 삭제되어 ‘균’이라는 이름으로만 불려졌으며, 그가 생전에 간행한 책들도 ‘허’라는 그의 성이 삭제된 채 전해지게 되었다. 복권된 다른 사람들과 달리 허균이 뒤집으려 했던 대상은 집권층이 아닌 조선왕조 자체였기 때문이다.
조선이란 나라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구조 속에서 지배층은 민중에게 끊임없이 굴종(屈從)을 강요하였고 거역하면 폭력의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였고 더러는 타협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피지배계층이 지배층으로 올라서거나 또는 그 위치가 바뀌는 것을 막아왔다. 피지배계층은 생산자이면서도 그 관리에는 참여할 수 없었고 사회에 중요한 구성원이면서도 그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였다.
즉 지배층의 의사가 일방적으로 피지배층에게 전달되었고 피지배층의 의사가 지배층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하여 민본사상(民本思想)을 천명하면서도 백성의 의사를 전달하거나 그들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제도 장치는 없었던 것이다.
허균은 16세기에 태어나 청년기를 보내고 17세기부터 활동한 인물이었다. 이 시기는 서구에서는 르네상스 초기에 해당되고 중국에서는 신흥세력인 여진족 곧 청이 일어난 때이고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가 태동하고 있던 때였다.
참고 자료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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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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