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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만은『에피 브리스트』는 “일흔 살의 작가의 걸작이며(...) 유럽산문의 보물이며(...) 서사문학의 행운이며 저명한 작품 Meisterwerk des Siebzigjäahrigen,(...) Kronjuwel erzäahlender europäaischer Prosa(...) Glüucks- und Ruhmesfall erzäahlender Dichtung(...)”으로 평가하면서 그의 작품에 나타난 에피가 규범을 파괴하고 그의 욕망과 행동으로 그의 삶을 마무리 지으며 살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에피브리스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1880년대 아르만트 폰 아르데네(Armand von Ardenne) 남작과 그의 부인인 엘리자벳(Elisabeth)과 에밀 하르트비히(Emil Hartwich)라는 지방법원 판사가 부정한 관계로 인한 이혼과 그 결투에서 하르트비히가 사망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소설이다. 그 당시 신문에 보도 되었던 사실은 다음과 같다.
플로트 Elisabeth Freiin von plotho가 1853년에 엘베 강변의 마그데 부르크근처의 브르스트에서 태어났는데, 일찍부터 엘제 Else로 불렸다. 그녀는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다섯 명의 동생들과 함께 자란다. 그녀가 열네 살 때 놀이를 하다가 이를 훼방하는 다섯 살 위의 아르만트 레온 폰 아르데네 Armand L´eon von Ardenne를 알게 되었다. 아르만트는 경기병 생도로 전형적인 군인이면서 다른 사람보다도 문학적, 음악적인 자질이 뛰어났다. 엘제는 풍부한 환상과 건전한 이성을 지녔다. 엘제는 열일곱 살의 나이로 다섯 살 위의 아르만트와 1871년 2월 7일 약혼하고, 2년 뒤인 1873년 1월 1월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께서 장만해둔 베를린 동물원 근처에 있는 집으로 이사한다. 얼마 후 딸 하나와 아들을 낳는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뒤셀도르프에서 살았으며, 그 이웃에 법원판사 에밀 하르트비히 Emil Hartwich가 살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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