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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ㆍ발행기관 : 동국사학회
ㆍ수록지정보 : 동국사학 / 52권
ㆍ저자명 : 田中史生
ㆍ저자명 : 田中史生
목차
Ⅰ. はじめにⅡ. ?昌元年渡唐と在唐新羅人
Ⅲ. 慧?と?昌の??
Ⅳ. 大中元年の??と江南の唐商
Ⅴ. 普陀山の慧??承と新羅人
Ⅵ. 石造物の??
Ⅶ. むすび
한국어 초록
에가쿠의 입당은 확실한 것으로는 회창 원년(841)~동 2년(842), 회창 4년(844) 3월 이전~대중 원년(847), 대중 2년(848)~대중 3년(849), 대중 6년 (852) 전후, 함통 3년(862)~동 4년(863)의 총 5회를 헤아리고, 게다가 대중 12년(858) 전후의 보타산 전승(?承)을 더해도 6회의 입당의 가능성이 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입당승의 왕래로서는 월등한 횟수이다. 이 사이에 그는 오대산?천태산을 포함한 당 각지를 순례하고, 당승의 일본 초빙에 성공하였으며, 혹은 신라인?당인의 협력을 얻어 명주 일본의 교역 루트를 열고, 이 항로상에 있는 보타산의 관음신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또 백씨문집 이나 당제(唐製)의 석조물을 가져오는 등, 일본의 당문화의 이입(移入)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일견 일본을 초월한 존재로 평가할 수 있는 에가쿠에게는 사료H에 있는 것처럼 동아시아와 연결되는‘일본’을 강하게 의식한 자세도 보인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다치바나노가치코(橘嘉知子) 등 일본 지배층의 의사가 작용하고 있던 것도 경시할 수 없다. 에가쿠가 일국(一?)?일사(一寺)에 얽매이지 않고, 동아시아교류세계를 그대로 자신이 살아갈 장으로 한 것은, 심각한 왕위계승문제를 포함하며 정쟁을 되풀이 하는 당시 일본 지배층들의 보다 보편적인 가치?문화를 추구하는 자세와 관계있다고 생각한다.영어 초록
에가쿠의 입당은 확실한 것으로는 회창 원년(841)~동 2년(842), 회창 4년(844) 3월 이전~대중 원년(847), 대중 2년(848)~대중 3년(849), 대중 6년 (852) 전후, 함통 3년(862)~동 4년(863)의 총 5회를 헤아리고, 게다가 대중 12년(858) 전후의 보타산 전승(?承)을 더해도 6회의 입당의 가능성이 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입당승의 왕래로서는 월등한 횟수이다. 이 사이에 그는 오대산?천태산을 포함한 당 각지를 순례하고, 당승의 일본 초빙에 성공하였으며, 혹은 신라인?당인의 협력을 얻어 명주 일본의 교역 루트를 열고, 이 항로상에 있는 보타산의 관음신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또 백씨문집 이나 당제(唐製)의 석조물을 가져오는 등, 일본의 당문화의 이입(移入)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일견 일본을 초월한 존재로 평가할 수 있는 에가쿠에게는 사료H에 있는 것처럼 동아시아와 연결되는‘일본’을 강하게 의식한 자세도 보인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다치바나노가치코(橘嘉知子) 등 일본 지배층의 의사가 작용하고 있던 것도 경시할 수 없다. 에가쿠가 일국(一?)?일사(一寺)에 얽매이지 않고, 동아시아교류세계를 그대로 자신이 살아갈 장으로 한 것은, 심각한 왕위계승문제를 포함하며 정쟁을 되풀이 하는 당시 일본 지배층들의 보다 보편적인 가치?문화를 추구하는 자세와 관계있다고 생각한다.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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