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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ㆍ발행기관 : 한국박물관교육학회
ㆍ수록지정보 : 박물관교육연구
ㆍ저자명 : 최은주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Ⅲ. 결 론
참고문헌
한국어 초록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영국의 식민지 통치하에 있었던 인도에서,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는 1921년 벵갈 지역에 위치한 산티니케탄(Santiniketan)에 작은 미술학교를 세워 자신의 예술에 대한 지침을 교육적으로 이식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예술이란 민족적이면서도 동시에 국제적이어야 하고 지역적이면서도 범세계적 이어야 한다(Art must be both national and international, local and world-wide).”라는 신념을 실현시키기를 희망하였다. 산티니케탄의 미술학교에서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자신이 주도했던 범인도적(pan-Indian) 원시주의 조형방법으로부터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시도된 민족주의 화풍, 표현주의 화풍 등을 통해 향토적 미술화풍이 나타났다. 다른 한편, 그의 10살 아래 조카인 아바닌드라나트 타고르(Abanindranath Tagore, 1871-1951)는 일찍이 벵갈에서 동양주의에 입각한 인도주의의 정신과 이상을 찾으려는 노력을 경주하여 벵갈화파의 거두가 되었다. 식민지 지배 시대에 서양미술의 영향으로 인한 서구화의 단계를 경험했고, 그러던 중 반식민주의, 반영(反英)운동의 일환으로 등장한 문화적 민족주의 운동 안에서의 미술의 역할이 민족주의와 국제주의를 사이에 놓고 어떠한 양상을 전개시켰는지를 벵갈화파와 산티니케탄 미술학교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극명함 속에는 매우 복합적인 대항관계가 존재한다. 본 논문은 아바닌드라나트를 중심인물로 하는 벵골화파가 실제 자신들의 화풍과 기법을 개발함에 있어서는 일본의 일본화풍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국제주의자적 면모를 숨기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고자 하며 반면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자신과 그의 후계자들이 국제주의를 적극 옹호하면서도 인도의 자연과 생활방식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표현을 미술형식에서 찾아감으로써 종국에는 인도적 향토주의를 어떻게 확립해 나가는 지를 그들의 교육철학과 방식 등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20세기 전반기, 벵갈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인도의 민족주의 미술운동의 발생배경과 사상, 주요 인물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 인도 근대미술의 한 단면을 고찰하고 이러한 운동이 현대의 인도미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전후한 시기, 벵갈화파와 산티니케탄에서 배출된 일단의 화가들은 이전 세대가 추구한 재생주의와 향토주의 모두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삽화와 판화 작업을 통해 공동체적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냈던 자미니 로이(Jamini Roy)나 진보적 도시였던 봄베이에서 결성된 진보예술가그룹(Progressive Artists Group, PAG)의 화가들은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과거 인도 근대미술의 영욕에서 자신들을 분리해 내고자 하였다. 그 결과로 이들 화파는 독립 이후 완전히 단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벵갈화파와 산티니케탄 미술학교에서 심화, 확산되었던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에 관한 논의와 실천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간과할 수 없다. 수자(Souza), 후세인(Husein) 등 전후 1세대 화가들에서부터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같은 현대의 작가들에게까지, 그들 작품 속에 나타나고 있는 인도적 미술의 특성이 식민의 경험 속에서 배태되었던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논의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 초록
During the British Raj in India of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y, Rabindranath Tagore (1861- 1941) established an art institution in Santiniketan, Bengal in 1921, for practicing his principle about art. He insisted “art must be both national and international, local and world-wide.” The art school in Santiniketan became the centre for paintings with local art, which was derived from the pan-Indian, primitive forming methods of Tagore himself and the nationalistic and expressionist style of his successors, etc. Meanwhile, his nephew, Abanindranath Tagore (1871-1951) led the Bengal School of Art with his pursuit for an ideal and a humanitarian spirit based on Orientalism. Under the British dominance, there existed two conflicting forces in Indian art: It was westernized under the influence of European art, but simultaneously, anti-British movement which strongly resisted colonial power aroused cultural nationalism. In the complex circumstance, the Bengal School of Art and the institution in Santiniketan developed their duality in style, encompassing both national and international tendency. For a close examination of the binary aspects, this study deals with the historical fact that the Bengal School enthusiastically adopted Japanese style of painting to build up its own technique and style. Also, it focuses on how Rabindranath Tagore and his followers set up regionalism through their educational principles and practices in the process of exploring an artistic form that could reconcile the Western and Indian culture. Specifically, it looks into the historical background, doctrine, leading figures and their works which constituted India's nationalist art in Bengal of the early 20th century. In other words, the paper aims at studying one of the most important movement in the modern Indian art and how it led to the art of India today. The front and the back of Independence, a part of artists from Bengal School and Santiniketan School sincerely desired to overcome conservatism and regionalism which the previous generation artists had pursued. For example, Jamini Roy had revealed Indian community spirit with a lot of illustrations and printmaking works. And the artists of Progressive Artists Group(PAG) in Bombay which was the place of the most progressive city at that time, tried to isolate the cause of the problem of the Indian modern art. Nevertheless filial artists wanted to make a clean break with the past, specific discussions and practices surrounding nationalism and internationalism of Bengal and Santiniketan School couldn't be ignored in the modern art field of India. From Souza and Husein belonged the 1st generation artists after the Independence to Anish Kapoor, Indian artists haven't been irrelevant to the topic of nationalism and internationalism of Bengal and Santiniketan School under the experience of colonialism.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