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정리
- 최초 등록일
- 2007.01.04
- 최종 저작일
- 2007.01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영국,일본,프랑스,사회주의,제국주의 등의 민족주의를 간락하게 정리하였습니다.
민족주의와 관련한 학교시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영국의 민족주의
2. 프랑스의 민족주의
3. 제국주의국가 민족주의
4. 일본의 민족주의
5. 식민지 민족주의
6. 사회주의국가 민족주의
<<결론>>
본문내용
① 영국의 민족주의
- 민족주의가 세계를 움직이는 결정적인 힘이 된 것은 18세기 초였으나, 영국은 이보다 빨라서 17세기에 이미 민족주의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세계에서 제일 먼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영국은 부르주아지의 성장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빨랐다. 그들은 성장과정에서 중세의 미망(迷妄)을 타파하는 과학적 정신을 발전시켜, 왕권의 시녀가 되어버린 국립교회(國立敎會)의 개혁을 주장하는 한편, 국가와 국토를 국민의 것으로 만드는 혁명적인 정치이론을 창안하였다. 그리하여 이것을 17세기의 청교도혁명을 통하여 최초로 실천하였다. 이것은 또한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쳐 독립전쟁(1776∼1782)을 일으키게 하였다. 본국의 압정(壓政)에 시달리던 미국은 본국과 투쟁하는 가운데 민족주의를 형성하였다. 투쟁의 선두에는 부르주아지가 섰으며, 그들은 민족주의가 갖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교묘히 이용하여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② 프랑스의 민족주의
- 민족주의가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은 18세기의 프랑스혁명(1789)에서이다. 여기에서는 혁명의 와중(渦中)에 민족주의가 형성되었다. 혁명의 선두에는 부르주아지가 서서 민중을 이끌었고, 민중의 압력을 배경으로 하여 군주의 절대권(絶對權)을 부인하는 한편, 성직자․귀족의 특권을 폐지하고 인권선언을 공표하였다. 혁명정권이 내걸었던 `자유․평등․박애`의 기치(旗幟)는 프랑스 국민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외의 나라들에도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까닭으로 혁명의 진행은 프랑스의 군주와 귀족은 물론, 전(全)유럽의 군주․귀족들까지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무력간섭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 사이에서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일어난 애국심과 민족주의는 이를 완전히 물리쳤다. 당시의 프랑스에서는 민족주의란 절대군주에게 반대하는 일이며, 애국심이란 혁명을 지키는 일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민족주의는 공화제(共和制)와 민주주의를 뜻하였고 애국자는 곧 혁명가를 뜻하였다. 이런 경향은 1793년 자코뱅당(黨)의 독재기에 최고조에 달하였으며, 이 시기에는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794년 쿠데타에 의하여 자코뱅당이 몰락하자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17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 성공과 함께 더욱 심화되었다.
프랑스에서 민주주의가 민족주의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한 시기는 나폴레옹이 유럽대륙에 대하여 침략전쟁을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 전쟁 중에 유럽대륙에서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탄생하였다. 즉, 프랑스의 민족주의는 프랑스의 침략군에 대한 국민의 저항 가운데서 탄생하였으며, 이의 지도적 역할을 한 것은 부르주아지가 아니고 절대군주의 정부 및 귀족들이었다. 이들 절대군주의 정부 및 귀족들은 프랑스의 침략군에 대한 국민의 증오심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그들의 계급적 이익과 모순되지 않는 형태로 민족주의를 옹호, 발전시켰다. 절대군주나 귀족들은 이와 같은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그들의 권위를 지켰고 혁명을 방지하는 방패로 삼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