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근대화 관련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6.07.14
- 최종 저작일
- 20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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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19세기 전후의 사회적 상황
2. 한·중·일 삼국의 개방
3. 서양에 대한 한·중·일의 대응과 근대화
4. 근대화의 결과
5.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동양의 역사’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동양의 중심은 중국이었구나.’, ‘중국이 대국의 프라이드가 엄청나구나.’ 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동양이라고 했을 때, 물론 나라들이 많이 있지만 근대 이전만 하더라도, 중국의 존재감은 막강하였다. 전 세계를 통틀어 보더라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 중심에는 중화사상이 있었다. 중화사상이라고 해서, 중국이 어떤 식으로 생각했고 자신들의 생각을 주변에 어떻게 강요했는지에 상관없이, 주변국들은 중화사상이나 그 사상을 강요하는 중국에 개의치 않고 중국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권을 정당화시키려는 발상에서 중화주의적 질서를 반영시켰다.
하지만 19세기를 전후로, 한국과 중국, 일본 삼국은 서양이라는 존재에 충격을 받았고, 전과 후의 사회변화는 엄청났다.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 한국, 중국, 일본은 발전이 미흡하고 전체적으로 퇴조적인 모습을 보였던 반면에, 서양에서는 산업혁명 이후로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여 초기 헤게모니 국가인 영국을 필두로 제국주의로의 발돋움과 더불어 그들의 물질문명을 밖으로 표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에 따라, 아프리카대륙과 아시아대륙은 험난한 시대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개항을 전후로 하여 일어났다. 개항이전까지 또는 서양에 의해 변화를 겪기 전까지, 중국은 중화사상에 입각해 있었다. 당시 조선은 이러한 중화사상을 믿고 따라가고 있었고, 일본은 내부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당시로서 서양의 침입과 그 문물과의 만남은 한국, 중국, 일본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러한 충격 속에서, 각 나라들은 그 시대적 흐름에 대응하는 방법이 확연히 다르게 나타났다. 바로 그 차이가 식민지와 반식민지 그리고 제국주의로 이끌었다.
이 글에서는 식민지와 반식민지, 제국주의로 나가게 된 한·중·일의 사회상황과 개항과정, 그리고 서양의 근대화에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 그에 따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비교·서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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